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모회사가 출자해 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회사를 자회사라 부른다. 그런데 이 ‘자회사’가 지금 난리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 반대에도 수서발 KTX를 철도공사가 아니라 철도공사가 출연하는 자회사에 맡겼다. 며칠 전에는 비영리법인인 의료기관이 영리적 목적의 자회사를 차릴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자회사가 비영리기관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고, 시민들은 민영화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것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이와 비슷한 유형의 자회사 설립 예를 공기업과 재벌기업에서 확인해 본다. 공기업에서 자회사가 가장 많은 한국전력공사를 보자. 한전은 23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원래 정부 계획은 자회사로 쪼개 놓은 발전소 모두를 민간에 매각한다는 것이었으나, 여론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한전케이피에스가 2007년 12월, 한국전력기술이 2009년 12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며 일부 지분이 민간에 매각됐다. 2011년 6월에는 서부발전(44%)·삼성물산(31%)·현대산업개발(14%)이 지분을 가지는 민영 자회사 동두천 복합화력발전소가 설립됐다.

한전의 세 자회사는 모두 공기업 한전이 대주주이지만 운영방식은 민간기업 이상으로 수익성 중심이다. 한전케이피에스는 수입의 80%를 한전 자회사들을 상대로 한 전력정비 사업으로 올리고 있다. 실제는 한전의 전력정비 사업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회사는 지난 3년간 당기순이익이 2천130억원에 이르고, 수익성 지표인 순이익률은 11%에 달했다. 한국전력기술 역시 비슷한데, 매출의 60% 이상이 한국전력 자회사들에 대한 엔지니어링 수입이면서도 지난 3년간 당기순이익은 3천266억원, 순이익률은 16%에 달했다. 한국 민간기업들의 같은 기간 평균 순이익률이 3%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수익이다.

그런데 황당한 건 다음이다. 순이익 대비 배당 비율을 나타내는 배당성향이 두 한전 자회사 모두 60% 내외라는 것이다. 참고로 민간기업 배당성향은 20% 내외다. 두 한전 자회사 정도의 높은 배당성향이 계속되면 외투기업의 경우 보통 ‘먹튀’ 소리를 듣는다. 시민 세금으로 운영하면서 3년간 배당으로만 두 기업은 3천200억원 가까이 주주들에게 퍼 준 것이다. 대주주인 한전에 귀속되는 배당을 제외하더라도 1천억원 가까이는 민간 투자자들에게 나갔다.

삼성물산과 현대산업개발이 참여하고 있는 동두천 복합화력발전소는 더하다. 수도권에 근접한 최적의 위치에 설립된 동두천 복합화력발전소는 2015년 가동에 들어갈 경우 연간 2조원 정도의 매출에 1천억원 가까운 수익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익의 절반 이상을 삼성과 현대, 그리고 재무적 투자자로 불리는 금융기관들이 가져가게 된다. 한전이 직접 하면 될 일을 별도 자회사를 만들어 민간자본에 지분을 매각하면서 발생하게 된 세금유출이자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맨땅에서 헤엄치듯 돈 버는 일이다.

다음으로 재벌 자회사들의 예를 보자. 재벌 대기업들이 모회사가 해도 되는 사업을 별도 자회사를 설립해 시행할 때는 주로 비자금 조성이나 경영권 승계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얼마 전 회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효성그룹은 자회사 설립을 통한 비자금 조성의 단적인 예다. 효성이 군에 납품하던 제품을 로우테크놀로지라는 회사로 분사해 생산하며, 둘 사이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도 가장 의혹을 많이 받은 것은 자회사 간 부당내부거래였다. 삼성전자 자회사 삼성에스디에스가 전산망 관리비를 과다청구하고, 삼성전자가 이를 받아 주는 식으로 삼성에스디에스에서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자금 조성에 이용되는 자회사들의 특징은 특별한 기술 없이, 또는 굳이 모회사로부터 갈라져 나올 이유 없이 세워진다는 점이다. 삼성에스디에스나 로우테크놀로지 모두 아주 범용화된 기술로 모회사와의 거래에서 이익을 발생시킨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세워진 자회사들도 빈번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가 대표적이다. 글로비스는 기술도 없고, 사업내용도 없는 회사다. 글로비스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하던 반조립부품(CKD) 공급사업을 빼 와 2001년 설립됐다. 지금까지도 전체 매출의 50% 가까이를 차지하는 반조립부품 공급사업은 현대차와 부품사가 생산한 부품들을 포장해 배에 싣는 것이 전부다. 물류사업도 마찬가지인데, 글로비스의 물류사업이라는 것이 지입차주 관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 마련만이 이 자회사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일감 몰아주기로 연간 11조원 매출에 5천억원이 넘는 순익을 올리고 있다. 32%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정의선 부회장은 매년 200억원 가까운 배당과 3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주식을 가지게 됐다.

수서발 KTX 자회사는 그 자체로는 설립목적이 없다. 별도 기술이 필요한 것도, 별도의 영업이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재벌 자회사로 따지면 삼성의 비자금 목적 자회사나 현대차의 경영권 승계 자회사와 비슷하다. 재벌 자회사가 총수와 그의 아들이 이해관계자인 반면, 공기업 자회사는 정권과 정권에 줄을 댄 민간기업들이 이해관계자라는 것만 다르다. 이미 한전 자회사들이 충분히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수익성 목적의 자회사 설립은 국민은 손해이고 투자자만 이득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영리목적사업이 광범위하게 허용되는 의료기관 자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 자회사들은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의료법인들이 하고 있는 사업을 떼어 간다. 각종 기자재·소모품부터 일부 의료행위까지 떼어 갈 것으로 보인다. 10여개 대학병원에 구매대행을 하는 이지메디컴이란 회사는 창고 하나 지어 놓고 매년 20억원 가까운 이득을 올리고 있는데, 이제 이런 걸 병원들이 직접 자회사를 세워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익은 모두 환자들의 병원비에서 나온다. 단언컨대, 정부의 자회사 방침은 민영화와 같은 말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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