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철도 민영화는 철도의 운영을 분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이 단계가 시작됐다."

외슈타인 아슬락센(62·사진) 국제운수노련(ITF) 철도분과 의장의 일갈이다. 아슬락센 의장은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하고 한국 정부와 코레일의 노동기본권 침해를 감시하기 위해 지난 11일 6명의 ITF 대표단과 함께 방한했다. 올해 8월 철도노조와 공공운수노조·연맹이 공동주최한 '한국철도의 미래를 위한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이후 4개월 만이다. 아슬락센 의장은 당시 <매일노동뉴스> 인터뷰를 통해 국토교통부의 '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대한 국제 노동계의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하지만 변화된 건 없었다. 아슬락센 의장은 국내외 노동계의 우려와 반대에도 한국 정부와 코레일이 철도 분할을 강행하고 있는 것에 크게 실망한 듯했다. 12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그를 만났다.

"WTO GPA 개정, 한국자산을 외국 민간기업에 팔아넘기는 행위"

아슬락센 의장은 수서발 KTX 운영을 맡을 주식회사 설립이 민영화가 아니라는 한국 정부와 코레일의 주장에 대해 "정말 잘못된 얘기"라며 "모든 철도 민영화는 철도의 운영을 분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앞으로 코레일에서 몇 개의 회사가 분할될 것"이라며 "분할된 회사가 공공소유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오로지 민영화 전 단계라는 점을 말해 줄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흔히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는 효율성이다. 아슬락센 의장은 "철도를 효율화하는 것과 민영화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철도산업에서 분할을 한다는 건 효율성이 아닌 이데올로기적인 이유가 크다는 설명이다.

그는 단일 유럽철도 권역 구축과 철도운영부문 시장개방을 강화하는 내용의 4차 철도종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유럽위원회)가 "민간회사가 철도를 잘 운영한다는 근거는 없으며, 민영화는 결국 각 나라의 정치적 선택일 뿐"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슬락센 의장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 프랑스 기업인들 앞에서 도시철도 시장을 비롯한 한국 철도시장 진출을 약속한 뒤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을 밀실처리한 사실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한국의 자산을 외국 민간기업에 팔아넘기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프랑스에는 철도 관리·운영 분야에 다국적 기업들이 존재한다. 해당 기업들은 자신들의 시장을 확보하는 데 관심이 높다. 한국으로서는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정부 정책 반대하면 불법파업?

ITF는 한국 정부와 코레일의 노조탄압에 주목하고 있다. 유럽 등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이 비일비재하지만 한국처럼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직위해제되고, 고소·고발과 형사처벌을 당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아슬락센 의장은 "한국 정부와 코레일이 하는 행위는 노사분규를 다루는 국제 표준에 전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철도노조 파업을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파업이기 때문에 불법파업"이라고 규정한 것과 관련해 "납득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노르웨이 출신인 그는 "노르웨이에서 철도노조와 같은 파업이 벌어지면 합법파업"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정책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나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나 삶에 영향을 주는 정부 정책에 대한 파업은 합법파업으로 규정돼 있다."

그는 노조 파업 이후 대체인력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각종 장애·사고 소식을 들려주자 "익히 들어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아슬락센 회장은 이어 대체인력을 '파업 파괴자'라고 표현하면서 "파업 파괴자인 대체인력 투입은 파업권에 대한 침해일 뿐만 아니라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한국 철도노조의 파업상황에 대해서는 다른 국제기구들과 긴밀히 논의할 것"이라며 "전 세계 500만 ITF 조합원들을 대표해 한국 철도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며, 한국 정부와 코레일에 노동자들과의 대화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요구한다"고 주문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