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2013년 12월2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25호 법정

재판장은 김정우 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과 법정을 가득 메운 100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어 내려갈수록 김 전 지부장과 사람들의 얼굴은 굳어 갔다. 그리고 나는 법정을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20개의 공소사실 중 15개가 유죄로 인정됐다. 그리고 징역 10월의 실형 선고.

김 전 지부장은 교도관들에 의해 다시 끌려 나갔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나는 사람들에게 재판 결과를 설명해야 했다. 그날 하늘 색만큼 잿빛이 된 쌍용차지부 조합원들과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현기증이 났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을 많이 더듬었다는 사실밖에는….

2013년 12월4일 오후 3시 서울구치소 변호인 접견실 36호실

접견실에 들어가기 전에 김 전 지부장으로부터 원망을 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는 앉자마자 조합원들 걱정부터 했다. 그리고 사건을 함께 진행했던 송영섭 금속노조 법률원장의 안부를 물었다. 올해 6월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검사실에 찾아갔을 때 그가 내게 했던 첫마디가 기억났다. “네 딸은 잘 크고 있나? 시간 날 때마다 안고 아빠 심장소리를 들려줘라.” 나는 그때도 김 전 지부장으로부터 "영장실질심사를 어떻게 했기에 구속영장이 발부됐냐"는 원망을 들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었다.

접견 내내 그의 따뜻한 눈빛이 나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투쟁의지를 다잡으며 비추는 형형한 눈빛이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우리는 서로 눈시울을 붉히다가 웃다가 하면서 해가 지고 저녁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2013년 12월4일 밤 금속노조 법률원 사무실

사무실에 오니 책상 위에 판결문이 있었다. 판결문을 읽다가 “집행유예의 형을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음에도 다시 동종의 범죄를 저지른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구절에서 눈이 멈췄다.

24명이 죽어 나가는 상황. 국가가 국정조사를 미끼로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을 하며 희망을 무참히 짓밟은 상황. 그리고 집단적인 폭력으로 무지막지하게 분향소를 부수는 상황. 김 전 지부장의 심신을 옥죄던 불가피한 상황이 떠올랐다. 재판장에게 판결문을 읽을 때 왜 그렇게 목소리를 떨었는지 묻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했다.

2013년 12월6일 점심 금속노조 앞 식당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밥을 먹던 동료 변호사가 “김 변호사님 사건 이겼네요”라며 스마트폰 화면에 띄운 기사를 들이댄다. 민변 노동위원회 권영국 위원장을 대리해 진행한 대한문 앞 집회금지통고처분 취소 사건이었다. 오전에 재판 결과를 확인했고 대한문 투쟁의 중심이었던 사람이 감옥에 있었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무심하게 기사를 읽다가 “재판부는 ‘중구청장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의 불법적인 집회·시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화단을 설치하고 경찰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화단을 둘러싼 채 서 있음에 따라 덕수궁 대한문 옆 인도에서는 헌법상 보장되는 평화적·비폭력적 집회·시위마저 제한되고 있다’고 밝혔다”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김 전 지부장의 1심 판결은 위 판결과는 달리 화단 설치 목적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

나는 식당을 나오면서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맸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와 김 전 지부장의 항소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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