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삼성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씨가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삼성은 답이 없다. 익히 알려졌듯이 간접고용 AS 기사들은 대부분 삼성전자서비스의 지시를 받고 있다. 임금지급 방식부터 AS 평가에 이르기까지 삼성전자서비스가 노동자 모두를 통제한다. 누가 봐도 삼성전자서비스가 사용자다.

삼성은 지금까지 AS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끝까지 가 보자는 심산이다. 언제나 법 위에 군림했던 삼성다운 태도다.

필자 생각에 현 사태에 대해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은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이다.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조만간 경영권을 물려받게 될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고객담당최고임원(CCO·Chief Customer Officer)이었다. 고객담당최고임원은 고객에 관한 모든 사항을 총괄하는 자리다. 위키피디아 정의에 따르면 콜센터·영업·제품의 사용자 편의성, 애프터서비스 관리 등 다양한 형태의 고객만족도(CS)를 책임진다.

즉 이재용 부회장이 고 최종범씨가 일했던 삼성전자 애프터서비스의 최고 책임자였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자신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계열사 삼성전자서비스에 애프터서비스 전체를 위탁했고, 삼성전자서비스는 90% 이상의 업무를 100여개 도급업체에 이를 재위탁했다. 형식적 도급관계를 빼면 실질적으로는 삼성전자가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애프터서비스를 관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최고 책임자가 이 부회장이었다.

이 부회장은 2008년 삼성 전략기획실 폐지 당시 공식적으로는 고객담당최고임원직을 사퇴한 것으로 돼 있지만 공식 직함은 지금까지도 고객담당최고임원 하나뿐이다. 그 이후 그 직책을 맡은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그가 여전히 고객담당최고임원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그룹은 알려져 있다시피 회장 비서실(현재 미래전략실)을 통해 그룹 전체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들이 쓴 <삼성웨이>에 따르면 일상적 영업활동을 제외한 중요한 결정은 비서실을 통해 내려진다. 삼성 비서실이 실제 운영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 김용철 변호사에 따르면 이건희·이재용의 뜻을 그룹 전체에 전달하는 것 역시 비서실이다.

이런 구조로 볼 때 삼성 노조탄압에 대한 사과와 반(反)노조 정책의 변화를 촉구하는 최종범씨 유가족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요구는 삼성 비서실의 결정 없이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가 결정할 수 없다. 금속노조에 대한 인정과 노조탄압에 대한 사과는 삼성 반노조 정책의 일정한 변화가 동반돼야 가능하다. 결국 비서실을 움직이는 이 부회장의 결단을 필요로 한다. 특히 그는 고객담당최고임원으로서 이번 사태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기도 하다.

수년 내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것으로 보이는 이 부회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예전과 같이 병영적 통제로 무노조 정책을 고수할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삼성이 한국에서 가장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영역이 노사관계다. 'S그룹 노사관계 전략'에서도 드러나듯이 삼성은 지금까지도 무노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해고하며, 현장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탄압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해외 삼성공장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해외에서도 비슷한 부당노동행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비리·비자금 비리 등 이건희 회장은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질렀다. 이 부회장은 자신의 경영능력을 증명하려 했던 e삼성 사업에서 실패했고, 지금까지도 공개적으로 별다른 경영 실적을 만든 것이 없다. 국가적 지원 속에서 성장했고,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의 차기 경영권 승계가 아무런 검증 없이 장자 상속 원칙으로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 전체가 불안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직함은 고객담당최고임원이다. 그리고 해당 업무 노동자가 한 달 전에 자결했다. 그의 유가족들이 2주일 가까이 삼성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책임 있는 차기 경영자의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란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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