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

개발독재 시대에 우리 민주변혁운동이 박정희 군사파쇼 정권을 부정할 때 그 근거로 몇 가지 ‘세계 최고’를 열거했었다. 그 하나는 세계 최고의 장시간 노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계 최고의 저임금 노동이었다. 거기에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 사망률이 추가됐다.

하루 16시간 노동, 하루 일당 50원, 환기통도 없는 다락방 봉제공장과 여공의 폐결핵…. 이런 장시간·저임금 노동과 열악한 작업환경에 대해 노동자가 인간임을 선언하고 저항의 횃불을 치켜든 것이 1970년 11월13일 전태일 동지의 장렬한 죽음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가까워 오는 지금 우리는 이것들에 더해 또 다른 ‘세계 최고’들을 가지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작업환경은 여전히 높은 데다, 세계 최고의 저임금 대신 이제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출산율은 그래도 최고의 자리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편이라면 자살률은 10년 이상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요지부동이다.

자본가계급이 산업화에 성공해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지,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들의 아픔은 얼마나 큰지, 이 같은 인간적 아픔은 외면되고 지속돼도 되는지등 대한 공론은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어쩌다 유명 연예인이 자살할 때 그로 인해 ‘모방 자살’이 일어날까 봐 걱정하는 소리 정도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바로 며칠 전 제1 한강교를 건너다 차창으로 낯선 것을 봤다. 한강대교 난간에 올해 여름까지도 보지 못했던 글들이 죽 써져 있었다. 한강에 투신자살을 하러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살을 하지 말라고 말리기 위해 써 놓은 것이었다. 요즘 자살이 부쩍 늘어나기 때문일까. 서울시에서 자살 문제에 대해 좀 더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기 때문일까. 여하튼 뭐라고 쓰여 있는지 궁금해서 오늘 아침 그 글자들을 보러 한강다리를 찾았다. 거기에 이런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생명! 생명은 내 것이 아니다. 태양의 빛과 대지의 꽃, 숨 쉬는 모든 것과 함께 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가진 것이 많고, 혼자라도 외롭지 않는 것이 내가 지닌 생명이다. 걱정 마라. 주먹을 쥐면 힘이! 손을 펴면 사랑이! 세상은 내 손안에 있다.”(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

“아무리 밤이 길어도 새벽은 반드시 옵니다. 용기를 내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대학총장 이길녀)

“22년 동안 팔천 미터의 히말라야를 서른여덟 번 오르며 도전했던 것은 '나는 할 수 있다' '꼭 해내고야 말겠다' 그런 의지와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감을 잃지 말고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시길 바랍니다.”(산악인 엄홍길)

“경기의 흐름을 홈런 한 방으로 뒤집듯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런 홈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야구선수 추신수)

좋은 말들이다. 결코 나쁜 말들이 아니다. 그러나 도저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말들이 자살을 생각하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설사 일시적으로 위로가 돼 그들이 자살을 포기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황폐화된 삶을 풍성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럴듯한 말들이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을 은폐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은 아닐까.

고 최종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는 매우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는데도 "배고프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생명을 거뒀다. 그렇게 배고픈 사람들에게 “걱정 마라. 세상은 내 손안에 있다”는 이야기가 객관적인 현실에 근거하고 있을까.

“여러분의 인생에도 홈런이 기다리고 있다”는 추신수 선수의 격려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을까. “YES WE CAN"이라며 큰소리치고 등장했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자본의 인격화에 불과해 의료보험 개혁조차 못하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 세계 최고의 자살률에 대한 처방이 될 수는 없다.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추진된 맹목적인 물질적 부의 추구-이것을 명분으로 한 고삐 풀린 자본축적과 착취의 질주-그 과정에서 초래된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그 양극화 과정에서 빚어진 민중들의 인간적 소외와 배제-더 정확하게 말해서 인간의 물질화와 노예화로 인한 “인간으로서의 인간적인 모든 것의 박탈”-이러한 사회적·경제적 기초와 그런 기초 위에서 “죽지 못해 사는” 민중의 생명활동 상태를 무시하고 오로지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서 자살률 세계 최고의 해법을 제시하는 그런 처방들은 행복전도사들의 ‘힐링’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아편에 지나지 않는다. 귀중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해서 제공되는 아편일 뿐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