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길 역사연구가

2000년 주가 대폭락 이후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면 신자유주의의 정체는 한층 분명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자본이 가치를 증식하는 두 가지 핵심 축은 주식과 부동산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주식은 한 번 우려먹은 상태가 됐다. 대폭락을 저지한 것만으로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 상태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초저금리 정책 덕분에 엄청나게 많은 자금이 시중에 풀려나갔다. 이 돈이 과연 어디로 흘러 들어갔을까. 두말할 필요 없이 부동산이었다.

엄청난 돈이 풀리자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자연스럽게 대출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서 활개를 쳤다. 이들 대출업체들은 대출금 원리금을 직접 회수하지 않고 수수료만 챙긴 채 대출금 원리금 상환청구권을 투자회사에 팔아넘겼다.

신자유주의 흐름을 선도해 온 투자회사에는 각지에서 넘어온 대출금 원리금 상환청구권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청구권은 대출받은 시민의 신용 상태에 따라 종류가 달랐다. 신용이 높은 경우는 이자가 낮았다. 반면 신용이 낮은 경우는 이자가 높았다. 서브프라임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후자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투자회사는 이들 청구권을 대출자 신용을 기준으로 크게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눈 뒤 패키지로 묶었다. 신용등급이 낮은 하품의 경우는 위험성은 높으나 수익률도 높은 이른바 고위험 고수익 정크 펀드에 해당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파생금융상품이었다.

파생금융상품을 구입한 고객은 다양했다. 일반 금융기관도 있었고 헤지펀드나 개인 투자자도 있었다. 이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은 은행이었다. 은행은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를 대비해 예금의 일정 비율을 예치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지불준비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은행 입장에서 거액의 자금을 그냥 모셔 두기가 아까워 국채 등 안전한 금융상품으로 대체해 일정한 이자 수입을 거둬 왔다. 그러던 중 가만히 둘러보니까 훨씬 수익이 높은 파생금융상품이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파생금융상품을 구입한 뒤 AIG와 같은 보험사에 위험 대비 보험을 들었다.

문제의 출발점은 수수료를 챙겼던 대출업체들 입장에서는 대출자가 원리금을 상환하느냐 여부는 전혀 상관없었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무조건 대출을 많이 할수록 이익이 됐던 것이다. 그래서 시가의 100%까지 주택담보대출을 해 준 것은 물론이고 주택담보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시민들에게도 대출을 해 줬다. 심지어 신용불량자까지 대출을 해 줬다. 때맞춰 신용등급을 조작해 주는 전문회사까지 등장했다. 이 모든 결과로 고위험 청구권의 비중이 너무 높아졌고 덩달아 위험 대비 보험도 증가했다. 돈에 눈먼 보험사는 담보능력을 무시하면서까지 보험을 받아 줬다. 복잡한 먹이사슬로 얽혀 있는 금융 생태계 전체에 위험성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집값이 계속 오르는 조건에서 시민들은 값이 오른 집을 팔아 대출금을 갚고 프리미엄도 챙기고 대출금도 상환할 수 있었다. 금융 생태계 또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집값이 영원히 오를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집값이 일정한 한도를 넘어서면 다른 사람이 더 이상 구입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 순간부터 수요가 사라지면서 집값이 급격히 떨어진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말하자면 부동산 시장에 형성됐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것이다.

집값이 폭락하기 시작하자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집을 팔더라도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이들은 집은 집대로 날리고 파산자 신세가 돼 거리로 나앉아야 했다.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지자 청구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파생금융상품들은 일거에 휴지 조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자 파생금융상품을 보유하고 있던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보험사로 몰려갔다. 하지만 담보능력을 초과해서 보험을 받았던 보험사들은 제대로 응할 수 없었다. 도리 없이 금융 생태계 전체가 휘청거리기에 이르렀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하자 힘겹게 버티던 금융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잇따라 파열되면서 위기의 쓰나미가 초거대 금융기관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8년 주가 대폭락과 함께 세계에 군림하던 월가의 초거대 금융기관들이 차례로 쓰러져 나갔다. 그 와중에 일반인들까지도 거덜이 났다. 2008년 한 해 동안 금융위기로 인한 미국 가정의 손실은 총 11조달러에 이르렀다. 금융위기의 파괴적 영향은 미국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주식시장은 대략 20조달러 이상의 손실을 봤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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