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
노동센터 소장

대한민국은 삼성왕국이다. 전체 국내총생산의 20%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매출액과 천문학적인 순익을 자랑하면서 이건희 총수 일가가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초법적 권력을 행사하는 삼성은 한국 사회에서 국왕처럼 군림하고 있다.

무노조 경영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결국 비정규 노동자의 목숨까지 앗아 간 삼성의 위세 앞에 심지어 중앙정부와 경찰조차 머리 숙이고 있다. 최근에도 고용노동부는 삼성전자서비스의 명백한 위장도급에 면죄부를 줬고 프레스센터는 삼성 관련 기자회견이란 이유로 대관을 취소하는 유례없는 일도 벌어졌다. 삼성전자 본사 앞 집회 때마다 경찰은 영락없는 삼성 사설경비대처럼 군다. 법과 상식이 삼성 앞에선 무용지물이 되는 형국이다.

하지만 초일류와 1등의 신화에 가린 삼성의 민낯은 추악하다. 무엇보다 헌법 제33조에 보장된 기본권인 노동 3권을 원천부정하는 전근대적 경영이념은 아무 데나 찔러도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열악한 노동실태를 낳았다. 반노동의 선두주자인 삼성그룹은 좋은 일자리를 최소화하면서 불법·탈법을 동원한 비정규직 양산의 온상이었다. 노조파괴 전략 문건에서 숨김없이 드러난 것처럼 노조를 말살하기 위해 온갖 치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고사 및 무력화 전략을 일관되게 관철시켜 온 무데뽀식 노조파괴는 여타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 사회에서 노조가 가진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불온시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그뿐인가. 산업재해와 직업병이 끊이지 않는 작업환경이지만 백혈병 등으로 숨져 간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인권은 발붙일 데도 없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고, 민간부문 재벌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시금석이 되고 있는 지금 삼성은 노동과 관련해 철저한 반면교사로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갑이 반노동을 기치로 삼으니 갑 닮은 을도 뒤따라 노동 괄시가 당연하다 여긴다. 천안 두정센터와 서울 영등포센터에서 벌어진 막말과 폭력은 노동자들을 기계부품처럼 여기는 삼성 원청자본의 본모습이 고스란히 판박이처럼 되풀이된 것에 불과하다. 조합원에 대해 테러에 가까운 폭력사태가 발생한 영등포센터에선 센터장이 사과 한마디 없고 오히려 조합원 탈퇴 공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안타깝게 자결한 최종범 열사와 관련해 책임이 큰 삼성 원청자본은 책임을 회피하며 유족이 노숙농성에 들어간 지금까지도 파렴치하게 외면하고 있다. “최종범을 살려 내고 이건희를 구속하라”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속 끓는 외침이 허울과 기만으로 가득 찬 삼성전자 본사 앞에 언제까지 공허한 메아리로만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13조원의 자산을 가진 오너 옆에 배고프다고 절규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있다.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지는 꽃처럼 속절없이 스러져 간 청춘들이 있다. 헌법상 기본권인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따가 되고 무수한 상처를 감내하며 패가망신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결국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 노동자를 죽이고 말았다. 배고프다고, 노조를 탄압한다고 목숨을 끊어야 하는 노동자가 또 하나의 가족인 곳이 삼성이다.

무소불위의 삼성에 맞서 10일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마침내 출범한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노동이 배제당하고 질식당해 온 삼성그룹 내 노동인권 신장을 최우선 과제로 내건 삼성 전담마크 단체다. 삼성의 문제가 단지 삼성그룹에서 일하는 정규-비정규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해결과제임을 각성한 시민사회 진영의 오랜 고투의 결과물인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향후 삼성자본을 향한 사회적 투쟁의 진지가 될 것이다. 노조활동이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는 삼성, 노동이 존중받는 삼성으로 만드는 교두보가 될 것이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수십 년 전으로 퇴행하고 있는 암울한 정세 속에서 삼성을 필두로 한 재벌자본의 전방위적 횡포를 넘어 한국 사회 노동인권을 도처에서 길어 올릴 희망의 옹달샘이 되길 소망한다. 그리고 끝내 최종범 열사의 소박하고 절실한 염원을 이룰 푯대를 세워 주리라 믿는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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