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그룹 노사전략 문건 공개와 삼성전자서비스 고 최종범씨의 자살로 삼성 노동인권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이달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는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출범한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준비위원회가 출범을 앞두고 세 편의 기고글을 보내 왔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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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천센터분회 총무

나는 삼성전자서비스 IT 엔지니어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삼성마크를 달고, 삼성제품을 고치며 일한 지 11년이 돼 간다. 강산이 한 번 바뀐 만큼 삼성에서, 아니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에서 보낸 것이다. 우습게도 11년 동안 나의 강산은 4번이나 바뀌었다. 현재 사장은 다섯 번째 사장이다. 그리고 현재 나의 경력은 본의 아니게 2년5개월이다. 사장이 바뀌면서 경력도 모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4개월 전 나는 금속노조 조합원이 됐다. 올해 7월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설립하고 4개월여 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2명의 조합원이 운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한 명은 과도한 업무에 지쳐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가야 하는데도 출근을 하려다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다. 또 한 명은 “배고파서 힘들고 다른 엔지니어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기가 힘들었다”며 “전태일 열사처럼은 못해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음을 택했다. 11개월 된 딸 별이를 뒤로하고 전국의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들과 민주노조를 위해 우리의 곁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측은 사과는커녕 자기 회사 직원이 아니고 협력사 문제니 책임질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참 웃긴다. 아쉬울 땐 “또 하나의 가족”이고, 어려울 땐 남이라니. “또 하나의 가축, 삼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자꾸 떠오른다.

최종범 열사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그토록 노조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노조가 결성되기 전 내가 바라본 삼성과 4개월 후 지금 바라보고 있는 삼성은 사뭇 다르다.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나는 서비스 노동자임에도 자본가의 눈으로 자본을 바라보며 삼성을 이해해 왔다. 당시 나는 그것이 불공정하고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시키는 대로, 매뉴얼대로 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회사도 나도 좋은 것이라며 진실을 애써 외면했다. 회사 사장과 자본가의 입장에서 타성에 젖어 그렇게 살아왔다.

‘삼성전자’ 하면 첫 번째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열에 아홉은 ‘서비스’라고 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장이 많아 바람 잘 날 없는 삼성의 제품들을 모두 감싸주는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 잘못한 게 없어도 죄송하단 말을 입에 달며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일등기업은 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아마도 삼성전자측은 93년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하면서 1등 주의를 표방하고 노력했기에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 이만큼 성장했다고 말할 것이다.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그 ‘노력’은 누가했는가. 삼성전자의 ‘좋은 서비스’ 이미지는 누가 만들었는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땀 흘려 일하며 고객들을 직접 만나 온 서비스 노동자가 없었다면 가당키나 했을까. 이런 우리를 외면하는 삼성을 보며 큰 비애를 느낀다.

그동안 삼성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는 제품이 뛰어나서라기보다 엔지니어의 고통을 발판 삼아 발전을 거듭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 경제의 약 30%를 점유하고 있고, 이제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 됐다. 노동자의 고혈을 빠는 기업, 삼성을 좋은 회사라 할 수 있을까.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세계적 대기업 삼성, 삼성반도체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백혈병)를 인정하지 않는 비윤리적인 기업 삼성, 막대한 자본권력으로 대한민국의 정·관계에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성장한 기업 삼성.

그러나 누구도 삼성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삼성에 비판적인 언론은 ‘자본’으로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삼성은 ‘자본은 곧 권력이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헌법에 위배된 이념을 만들어 냈다. 지난해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스위스 시민단체인 베른선언이 주관한 세계 최악의 기업 투표에서 삼성이 3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삼성이 창출해 낸 막대한 부와 경제적 이득의 수혜를 누리는 자들은 누구인가. 삼성의 막대한 이윤으로 국민의 삶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 더 나빠질 뿐이다.

현재도 앞으로도 나는 삼성 제품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삼성 제품을 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게 삼성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탐욕스럽게 착취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소비자들의 외면만 사게 될 것이다. 삼성이 바뀌어야 기업·노동자와 국민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임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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