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산업계에 ‘점진 퇴직’이 확산되면서, 고용의 한 패턴으로 굳어지고 있다. ‘점진 퇴직(phased retirement)’이란 퇴직을 앞둔 정규직 노동자가 완전히 퇴직해 연금만으로 생활하는 대신 계약직이나 파트타임 근로자로 재취업, 연금과 임금 및 수당을 동시에 받는 것. 최근 기업 연금이 대폭 축소된 뒤 노후 자금이 부족해진 노동자의 재취업 요구와 저임으로 숙련된 인력을 원하는 기업의 필요가 맞아 떨어지면서 생겨난 제도다.

세계적인 정보통신회사인 루슨트테크놀로지의 자회사인 아바야는 최근 50대 이 회사 정규 직원 1500명을 점진 퇴직시킨 뒤, 파트타임 노동자로 재취업시켰다. 이에 따라 이 회사의 전화 수리공인 톰 그리피스는 신분만 정규 직원에서 파트타임 노동자로 바뀐채 일터인 뉴욕주식 시장에서 똑같은 전화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다. 신분이 바뀜에 따라 부족한 임금은 연금으로 보충한다.이런 제도는 미국의 대다수 기업에서 일반화돼 최근 미국내 232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36%가 퇴직자를 종신직에서 계약직 등으로 신분을 바꿔 재고용했으며, 37%가 파트 타임근로자로 고용했다. 대학에서는 종신직 교수를 시간강사로 전환해 인건비를 줄이는 수단으로, 일반 기업에서는 연금부담을 줄이면서 숙련된 인력을 경쟁업체에 빼앗기지 않고 재활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와 기업의 요구가 맞아 떨어져 기업으로서는 돈도 아끼고숙련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노동자에게는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조기 퇴직 후 풍족한 연금으로 골프를 치거나 플로리다 휴양지에서 만년을 보낼 꿈에 부풀었던 50대 근로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평생 일해야 할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연금 수령 연령에 이르지 않은 점진 퇴직자에게 낮은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조기 지급하는 기업 연금도 편법으로지적돼, 이를 위한 법규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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