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은 우리 사회 노동운동의 절대명제 같은 것이다. 최소 동등한 지위에서 사용자와 교섭하고, 단체행동을 통해 사용자를 압박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의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조직화를 가장 큰 명제로 생각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불안정 노동을 겪고 있는 대상으로 비정규직과 여성·청년에 대한 조직화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올해 서른이 된 청년은 2년 이상 한 직장을 다녀 본 적이 없다. 이십대 초반에 커피전문점에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장사가 잘되지 않아서 사장님도 함께 일했다. 졸업 직전에는 고시원 총무를 하기도 했고, 졸업하고는 작은 업체에 사무직으로 들어갔지만 최저임금 수준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고 나왔다. 청년이 근무했던 아르바이트·비정규직·하청업체에 노동조합은 없었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이 이 청년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체교섭을 하려면 현장에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을 유지하기 위해 조합원인 노동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제대로 경력도 되지 않고, 임금 또한 최저 수준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청년에게 도대체 노동조합은 어떤 의미인가. 싸워서 바꾸자는 귀찮은 방식보다 체불임금은 행정적으로 돌려받고, 그냥 또 다른 직장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청년에게 누가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규직으로 3년 넘게 일한 커피전문점에서 해고를 당해도 임금이 최저 수준이고, 큰 경력도 되지 않아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청년에게 해고의 부당함은 노동조합 사람들만의 얘기다.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살아가는 청년은 그렇게 불안정과 저임금 노동에 익숙해져 있다. 대체가능하고 저질의 수많은 일자리들에 둘러싸여 있다. 좋은 일자리는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전전할수록 나로부터 멀어지고, 경력과 임금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나이에 맞지 않게 초라해져 이력서에 내세울 수도 없다. 동일한 계약관계·유사한 근로조건·공간적 일체감에 기반을 둔 큰 사업장은 더 이상 청년의 일터가 아니다. 대기업은 계속 작은 사업장으로 나눠 하청을 준다. 청년의 현장도 하청이고, 비정규직이다.

청년들을 조직하는 게 노동조합의 유일한 방식이 될 수는 없다. 불안정 노동을 전전하는 청년들에게는 노동조합이 자신의 편을 들어준 경험이 없다. 그리고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싸우기보다는 외면하고 다른 직장을 구한다. 노동조합은 이들을 조직하기 이전에 그들을 대변하고 또 그들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

사업장이 있는 노동조합은 고용계약과 임금구조가 다른 비정규직 청년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줘야 한다. 조합원을 넘어 비조합원인 청년들을 조직화하기 전에 먼저 대변해야 한다. 하청이 많은 원청의 노동조합은 수많은 하청의 노동자, 청년들을 대변할 의무가 있다. 지난해 언론노조 파업 때 외주화 비율이 너무 높아 사업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없었다는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평가는 그래서 뼈아프다.

노동조합 운동에서 청년과 비정규직을 조직하기 이전에 노동조합이 각 현장에서 비정규직과 청년들을 얼마나 대변해 왔는가 물어봐야 할 시점이다. 30살 즈음에 노동조합을 멀리서나마 경험해 본 사람은 대학 때 학생운동을 했거나, 아니면 대기업 직원밖에 없다. 대기업 직원 중에서도 정규직일 경우 노동조합은 자신의 것이었으나, 비정규직일 경우 대다수는 스스로의 노동조합을 갖고 있지 못했다.

물론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된 조합원들의 힘은 어디서나 필요하다. 하지만 비정규직과 불안정 청년의 조직화라는 표현은 말 자체로 모순적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그들을 조직화하기 이전에 대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대변할 것인지, 사업장과 지역, 직종과 업종 전체의 노동자를 대변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yangsou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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