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태 기자

30일이면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일하던 고 최종범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한 달이 된다. 고인은 여전히 차가운 냉동고에 누워 있다. 그런데 고인이 편안히 눈감고 땅속에 묻힐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금속노조를 포함해 ‘고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는 고인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건당 수수료체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세상과 이별하기 전 고인을 괴롭혔던 이른바 지역쪼개기와 표적감사 중단도 촉구하고 있다.

핵심은 책임소재다. 노조는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가 대화자리에 나와 해결할 것을 바라고 있다. 살아생전 고인을 힘들게 했던 여러 문제가 원청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반면에 삼성전자서비스측은 요지부동이다. 대화보다는 ‘사용자 흔적 지우기’에 골몰하는 것 같다. 고 최종범씨가 사망한 다음날 센터장을 앞세워 입장을 발표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노조의 교섭요구에는 “협력업체가 교섭하도록 권고하겠다”고 답했다. 이달 25일부터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제기한 노동조건·노조탄압 의혹에 대한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여러 문제를 야기한 당사자가 조사에 나선 형국이다. 누가 봐도 면피용이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실태조사가 신뢰를 받을 수 없는 이유다. 현장에서는 협력업체 사장인 센터장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센터장들은 “객관식이니 주관식으로 답하지 마라”, “(체크는 내가 할 테니) 이름과 소속만 써라”고 윽박지른다고 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집단적으로 조사를 거부하기로 했으니, 비조합원 위주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조사의 객관성은 보나 마나다. 삼성전자서비스가 “큰 문제 없다. 일부 문제점에 대해서는 협력사에 권고하겠다”고 밝히는 수순이 예상된다. 후안무치하다는 생각에서 나아가 섬뜩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삼성전자서비스는 고용노동부의 위장도급 조사 결과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면죄부를 받았다. 하지만 기업에게는 법적책임뿐 아니라 도의적·사회적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면 없진 않을 것이다. 법적 책임은 없지만 노조와 대화하는 모양새라도 취할 수는 없는 것일까. 스스로 삶을 등진 협력업체 노동자가 한 달이 되도록 차가운 냉동고에 누워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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