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공인노무사
(금속노조 법률원)

복수노조가 허용됐다고 하지만 한 번쯤 노조를 만들어 보려고 시도한 사람은 그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안다. 당장 내 가족 먹여 살리기에도 팍팍하다. 그런데 고민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모으고 자신의 작업장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누구라도 노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처음 설립할 경우 노조에 호의적이지 않은 사용자의 말 한마디, 태도가 조합 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문제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노조의 교섭권과 쟁의권이 제한되는 것을 구실 삼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가 훨씬 대담해지고 공세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노조설립을 원치 않는 사용자들은 노조설립 움직임이라도 감지되면 적극적으로 조합설립을 주동한 이에게 온갖 문제를 들이민다. 심지어 노조설립을 꼬드겨 회사 내 불화를 조장하고 직장질서를 문란케 한다는 등의 이유까지 동원한다. 징계를 통해 노조 와해를 시도하고, 간접적으로는 노조에 대한 비방여론을 조성해 노조 가입을 위축시키고, 탈퇴를 종용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한다.

이러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지난해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기획·실행돼 왔다는 사실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뿐 아니라 최근 소문만 무성했던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이 전 조직적으로 실행돼 왔음이 폭로됐다. 지난달 심상정 정의당 의원에 의해 드러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서는 2011년 삼성에버랜드가 어떻게 노조를 와해시켰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노조설립 준비사실을 사전에 파악하자 전사적인 비상상황실을 가동했다. 노조설립을 막기 위해 신속히 친사노조를 설립한 후 단체협약을 체결해 2년 동안 신설노조의 교섭권을 막았다. 주동자를 곧바로 해고했다. 노조 선전활동을 이유로 조합원들을 징계하고 형사상 고소 등을 진행해 조기에 세력확산을 막았다고 자평하고 있다. 특히 삼성은 노조설립의 이유가 신분상승을 위해 문제인력이 만든 ‘방탄노조’라고 비방했다. 이를 노조설립의 명분을 약화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언론대응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작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를 통해 훨씬 손쉬워지고 날로 과감해진다. 그런데도 부당노동행위 규율제도는 구닥다리다. 회사는 홍보물을 만들어 노조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친사노조를 앞세워 특정 노조와는 교섭할 의지가 없으니 노조를 탈퇴해 친사노조를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암묵적으로 특정 노조와 조합원을 왕따시키는 언론활동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그럼에도 부당노동행위 관련 법규정에는 이러한 노조약화 전략을 밝힐 수 있는 판단기준이 없다.

삼성그룹의 노조파괴 문건은 그간 삼성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노조설립을 방해하기 위해 기획적인 부당노동행위를 실행해 왔는가를 여실히 보여 줬다. 금속노조 삼성지회 소속 에버랜드 노동자들은 회사가 제기한 각종 형사고소사건에서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오히려 삼성에버랜드가 조합원들에게 행한 징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삼성지회는 이미 노조와해라는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입었다.

삼성이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사실, 삼성의 노사전략 문건에서 보여 준 구체적인 부당노동행위들이 모두 실제로 실행됐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다. 노조를 고사시키기 위한 회사의 전사적인 역량 투입과 대대적인 부당노동행위에도, 삼성지회가 설립됐던 2011년 당시 고용노동부는 회사에 대해 제대로 된 제재와 예방조치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단결활동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제재로 차단하지 못한다면 부당노동행위 규율제도 기능을 달성했다고 볼 수 없다. 특히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를 악용해 교섭을 최대한 지연하면서 노조를 고사시키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시나리오는 노사 모두 알게 됐다. 법·제도 자체에 근본적인 허점이 드러났음에도 현행 제도는 이를 제때 막아 낼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현행 노조법이 헌법상 노동 3권을 구현하는 법률이 되고자 한다면, 이제라도 부당노동행위 의미와 성립요건에 대해 전향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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