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종북몰이가 점점 더 가관이다. 이제 통합진보당으로 모자라 민주당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종북으로 몰고 있다. 반년 가까이 종북 타령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청와대의 목적은 단 하나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태를 덮는 것이다. 국정원의 느닷없는 남북정상 회의록 공개, 검찰총장에 대한 뜬금없는 혼외자식 논란,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대한 다소 황당한 공안수사는 모두 국정원 대선개입이 이슈가 될 때마다 이뤄졌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반민주적 공안몰이가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을까. 지지까지는 몰라도 상당수에게는 아직까지 용인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현재 60% 내외로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의 같은 시기 지지도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두 전임 대통령의 지지도는 첫해 11월 30~40%에 불과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직업으로는 주부와 무직, 지역으로는 대구경북, 연령으로는 60세 이상의 변함없는 압도적 지지가 바탕이 되고 있다. 그리고 반대로 화이트칼라·광주전남·40세 이하에서는 지지도가 매우 낮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현 정부의 이에 대한 노골적 수사 방해는 매우 위중한 민주주의 파괴다. 엄중함으로만 놓고 보면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 때보다 더 심각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촛불시위를 겪으며 지지도가 20%대로 추락한 것에 비해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대선 당시보다 지지율이 더 높아져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발언 논란이 시작된 6월부터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의 핵심 키워드가 ‘종북’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공안 드라이브가 어느 정도 통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는 뿌리가 깊고, 전쟁이라는 물질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반공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발전주의와 짝을 이뤄서만 제대로 역할을 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반공주의는 지배계급이 시민들의 내면화된 공포를 이용해 경제발전을 위한 희생을 감내하게끔 만드는 통치기술이었고, 시민들 입장에서 보면 반공은 가난을 벗어나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한 정치적 이념이었다. 한국사회 이데올로기적 특징을 흔히 반공발전주의라 부르는 이유다.

이렇기 때문에 정권의 공안정국은 대부분 경제위기 앞에서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경제위기 상황에서 무리하게 반공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권력을 지키려고 했을 때는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으로 권력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념적으로 기대고 있는 박정희 정권이 대표적이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한 박정희 정권의 기반이 근본적으로 흔들린 것은 1·2차 오일쇼크를 거치며 1970년대 중반부터 고도성장이 주춤하면서였다. 반공의 물질적 토대가 흔들린 것이다. 이후 전두환·노태우 군부독재 정권 역시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체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차원에서 보면 3저 호황 효과가 소멸되는 80년대가 끝나면서 반공-발전주의 위기와 함께 권력을 잃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지금과 같이 종북 마녀사냥에 기대어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면 비슷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박정희 시대와 같은 고도성장은 가능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2% 내외의 경제성장률만 기대할 수 있는 장기 저성장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발전주의는 과거에 대한 향수효과 이상을 발휘할 수 없으며, 결국 반공주의 역시 토대를 가지기 힘들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반민주적 종북몰이로 민심을 잃는다 해도 그것이 반대 진영의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 지배세력에 대한 환멸이 반드시 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현재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이후 수년 동안 뇌사 상태에 있다. 진보정당은 내파돼 정치적 의미를 상실한 상태다. 민주노조운동은 조직유지도 버거운 상황이다. 넓은 의미의 민주화 세력은 정치적 진공 상태에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보수-진보 양자의 오랜 정치적 무능상태는 시민들을 파시즘과 같은 극단적 정치적 선택으로 내몰았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진영은 정치적 대안으로 나서기 위한 연합을 서둘러야 한다. 진보정당들의 재구성과 노동운동의 진취적 정치투쟁, 시민사회의 역동적 의제들을 묶어 연합을 이뤄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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