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전북본부
법률지원센터 소장

"자자, 이 시간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어요."
"오늘 얘기 잘 들으면 돈도 벌 수 있어요."
"친구들 빨리 불러오세요."

무슨 소리일까. 어느 시장통에서 야바위꾼이 호객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느 강당에서 할머니·할아버지께 온열기구나 건강식품 팔려고 열변을 토하는 장사꾼 소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필자와 강사가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내지르는 목소리다. 신성한 교실에서 강사가 호객하듯 말하는 것이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린 아니 적어도 필자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매번 소리친다. 진짜 이 아이들이 오늘 아니면 앞으로 언제 노동법 교육을 받아 보겠는가.

외국인·노가다·힘든거…. 필자가 청소년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을 하면 꼭 하는 질문인 “노동(자)은 ○○다”에 대한 수강생들의 답변이다.

다른 지역에서 '거지'나 '범죄자'까지 나온 것에 비하면 그나마 양호하다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한국의 청소년들은 노동자가 돼 노동을 하는 것이 부끄럽고 싫은 것이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재화가 필요하고, 재화는 노동이 있어야만 생산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들의 아들이고 딸이면서도, 미래의 노동자인 우리 청소년들은 "노동자는 거지"라는 답변처럼 노동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청소년들이 원래 반노동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교육청이 노동인권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을 징계하겠다고 나서는 등 반노동 교육의 결과다.

매 강의시 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 경험을 물어보면 많은 학생들이 임금체불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응답한다. 실제 올해 5월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전북공동투쟁본부’가 전주 142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거의 대부분 최저임금법 등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위반 사실이 명확한 65개 사업장을 노동부에 고발했다. 이로 인해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사업주들의 욕설과 협박이 난무하는 전화를 받느라 한동안 시끄러웠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들이 임금체불이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상담해야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대부분 그냥 참고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실제 용기를 내서 체불임금을 신고해도 담당공무원과 사업주로부터 핀잔과 훈계만 듣는 계기가 되는 경우도 상당수다. 청소년노동에 대한 전문 상담창구가 시급히 필요한 이유다.

며칠 전 어느 특성화고 현장실습 학생의 상담내용이 아직도 필자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매일 야간근무를 12시간 정도 했어요. 일요일만 쉬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니까 토 나올 정도로 힘들고, 힘들어서 그만둔 애들도 많아요. 선생님께 힘들다고 했는데 핀잔만 들었어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에 사는 2013년 청소년 노동자의 현실이다.

"공장폐쇄에 맞선 노동조합. 이 사례를 기반으로 어떻게 노조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지 설명해 보시오."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준비하면서 본 지식채널e '그 나라의 교과서'에서 나오는 그 나라 학생들의 토론주제다. 몇 학년 내용인지 보면 더 놀랍다. 필자가 이런 거 강의하면 교육부와 고용노동부에서 "이장우씨, 노무사 아님"이라고 통보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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