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2013년 오늘, 노동자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풍경일까. 노동자권리를 위한 대한민국의 입법과 집행에서 노동자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겠다고 추진해 왔던 노동자 정치세력화였다. 오늘 그 결과로 탄생했던 진보의 당은 쪼개지고 위헌정당 해산심판이 청구됐다. 노동기본권을 보자. 공무원노조·전교조 등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법외노조로 공인되고,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및 전임자급여지급 금지 등으로 법내노조조차도 단체교섭권 행사와 쟁의행위 등 단체행동이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다. 그렇지 않은 노동조합이라도 여전히 쟁의행위 등 단체행동권 행사는 금지 및 제한이 원칙적이고 예외적으로만 허용되고 있는 지경이다. 개별적인 노동자권리의 핵심은 노동시간과 임금이다. 이 나라 노동자는 여전히 법정근로를 초과하는 세계 최장수준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고, 이 장시간 노동의 대가로 지급받는 임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장시간 노동은 법정근로를 초과하는 근로의 대가인 법정수당의 지급기준인 통상임금 문제에서 비롯된다. 통상임금이 법정근로의 대가 임금을 기준으로 해 노동현장에서 운영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법정외근로로 노동자를 내몰고 있다. 법정수당, 즉 연장·야간·휴일의 근로·연차휴가의 근로 등의 대가인 임금은 고용노동부 행정해석과 예규, 심지어 법원의 판례에 의해 법정근로의 대가인 각종 임금항목을 제외하고서 산정한 통상임금으로 지급해 왔다. 대한민국에서 장시간 노동은 통상임금을 온전히 법정근로의 대가 임금으로 파악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통상임금은 가장 중요한 노동자권리인 임금과 노동시간을 결정짓는 제도이고, 근로기준법 제50조가 정한 법정근로를 담보하는 제도다. 그런데도 노동시간단축은 고작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킬 것이냐 하는 입법논의로만 전개되고 있다. 그마저도 국회에서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2013년을 1개월여 남겨둔 지금, 이제 이 나라에서 통상임금에 관한 개선방안이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그 풍경을 감상해 보자.

2. 뉴스가 있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안을 마련했다는 지난 13일자 보도였다. 노동부는 노동법 교수 등 전문가들로 임금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서 운영해 왔다. 그중 한 위원은 "상여금이나 체력단련비 등 명칭과 무관하게 정기적으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돈은 모두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방안을 제1안으로 해서 지난 11일 노동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1임금산정기간 내로 한정하는 기존 체계를 유지하는 방안의 보완책을 달아서 제2안으로 제출했지만 12명의 위원 중 8~9명이 동의한 1안을 다수안으로 봐도 무방하다"며 노동부에 제출한 문서에는 1안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고 했다. 상여금·체력단련비…. 그 명칭이 뭐라도 임금이고 법정근로시 지급하기로 사전에 정해서 지급하는 것이라면 그 모두를 법정외근로의 대가 임금인 통상임금에 속해야 한다. 이것이 그 동안 수도 없이 내가 떠들어 온 주장이다. 법정에서 통상임금사건재판의 준비서면과 그 변론으로, 법정 밖에서 논문과 교육으로 반복해서 떠들어 왔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법론이 아니다. 현 근로기준법을 이렇게 해석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만 근로기준법의 노동제, 즉 주40시간 법정근로와 법정외근로의 대가 임금인 법정수당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지난 9월5일 대법원 공개변론에서도 주장했다. 노동부는 제멋대로 예규와 행정해석으로 법정근로에 지급하기로 정한 금품을 임금이 아닌 것으로, 통상임금이 아닌 것으로 제외하는 법집행을 해 왔다. 일부는 법원 판례마저도 무시했다. 그러니 노동부가 할 일은 근로기준법, 즉 법대로 할 일이지 임금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서 새로이 안을 마련해서 입법하겠다고 할 일도 아니었다. 노동부가 해야 할 일은 법의 개선이 아니라 자신이 한 법 해석의 시정이었다. 그동안 노동부는 임금제도개선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안에 정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리고 보도된 바와 같이 1안이 압도적인 다수안으로 노동부에 제출된 거라면, 이미 근로기준법이 정한 대로 하겠다는 근로기준법을 입법하겠다고 하는 이상한 입법이긴 해도, 이제 나는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1안으로 입법하게 될 것을 지켜보면 되는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시 했던 말이 법안으로 되지 않을지 염려하면서. 그런데 위원회가 마련해 제출했다는 1안, 즉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안도 이상했다. 보도에 따르면 위원회는 기업 부담을 감안해서 몇 년간 시행 유예기간을 두거나 확대된 전체 통상임금의 70%만 우선 적용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등 보완책을 제시했다고 했다. 그저 1안이 입법되는 것을 나는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1안이 입법되면 앞으로도 몇 년은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받아도 그 일부만 지급받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법안이 입법되면 기존에 법원판결로 얼마든지 인정될 수 있었던 정기상여금 등조차도 이 법안에서 정한 바에 따라 유예되거나 일부만 지급받는 이상한 풍경이 벌어질 수 있다. 위원회는 입법 이전의 소급 적용분에 대해서는 별도로 명시하지 않고 노사 합의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만 달았다고 보도됐다. 사용자가 알아서 줄 것 같았으면 지금 소송이다 입법이다 이렇게 통상임금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질 않으니 문제라는 건데 1안이 입법돼도 여전히 못 받은 임금을 받겠다고 소송하는 풍경이 벌어지고 만다. 그런데 그마저도 1안으로 입법하는 풍경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 보도가 있었던 이틀 뒤에 다른 언론사의 다른 보도가 있었다.

3. 임금제도개선위원회가 최종안 발표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뒤로 미루기로 했다는 지난 15일자 보도였다. 앞의 보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보도한 언론사가 다르니 앞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정정보도는 아니었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지 못하는 나는 두 보도를 다른 것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날 보도에서 임금제도개선위원회 관계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이후 판결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어떻게 반영할지 협의할 방침”이라며 “대법원판결은 현행법에 대한 논란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고 위원회 최종안은 주로 미래의 개선방안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이상한 임금제도개선위원회다. 그럼 무엇 때문에 전문가들로 임금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서 몇 달을 논의해서 안을 만들어 제출한다는 것일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기상여금 등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선고하면 그것이 근로기준법 해석이다. 그럼 법대로 사용자는 산정해서 지급해야 되는 노동자의 임금권리인 것이다. 이미 노동자의 권리라고 확보된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논의해 왔다는 1안에 따라 앞으로 발생할 부분에 관해서 사용자에게 일정기간 유예해 주거나 그 70%만 지급하도록 해주기 위해서 위원회는 논의해 왔다는 것인가. 이것은 그 동안 대법원 판례에도 반하는 예규, 행정해석으로 사용자로 하여금 법정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도록 보장해 준 노동부가 한 짓보다도 더한 짓을 노동법 교수 등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다. 노동부는 그나마 판례가 아직 일부 판결이다, 적어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아니라고 변명할 여지라도 있었다. 또한 위 보도라면 임금제도개선위원회는 조만간 선고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정기상여금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한다면 그때는 그 동안 위원회에서 논의를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고서 정기상여금 등이 포함되지 않는 안을 만들어 최종안을 제출하겠다는 것이라는 것인가. 도대체 무슨 “미래의 개선방안에 중점”을 둔다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현행법과 그 법집행에서 발생하고 있는 임금제도의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노동법 교수 등 전문가들로 구성했다는 위원회다. 그 위원회조차 노동자권리를 두고서 이렇게 이상한 풍경을 연출한다면 이 나라에서 법으로 정한 노동자권리는 노동시간, 임금의 문제에서 길을 잃고 지금처럼 법정근로를 무시한 장시간 근로와 법정근로의 대가 임금이 법정외근로의 대가 임금의 기준이 되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헤맬 수밖에 없다. 통상임금의 개선방안은 현재 법이 부당하게 노동자권리를 보장하고 있지 못한 것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어야지 현재 법이 보장한 노동자권리를 경영사정이니 경제니 사용자편을 드는 언어로 침해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개선의 방안이 아닌 개악의 방안일 뿐이다.

4.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5일자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임금 중심의 노동시장 설계도를 새로 그릴 때”라고 말했다. 통상임금문제도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며 노사정위원회의 임금·근로시간특별위원회는 위 노동부의 임금제도개선위원회가 내놓은 개선안을 받아 이해당사자와 전문가들을 불러 놓고 의견을 모아 가겠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설계하겠다고 통상임금 문제를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김대환 위원장은 나의 이 물음에 어제 인터뷰에서 이미 대답해 놓고 있었다. “협상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다. 내가 상대에게 하나를 주고 다른 하나를 받아 오는 것이 협상이다.”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해법은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는 데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 통상임금 문제는 노동자가 무엇을 사용자에게 주고 사용자로부터 무엇을 받는 문제가 아니다. 통상임금 문제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대로 법정수당을 지급받는 문제이며 근로기준법이 정한 대로 법정근로시간을 보장하는 문제이다. 통상임금 문제가 근로시간단축과 ‘기브 앤 테이크’할 문제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통상임금 문제를 노동자와 사용자가 주고받는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통상임금 문제를 임금문제로 바라보고 근로시간 문제와 주고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김 위원장을 통상임금 문제의 해법을 임금체계의 단순화에 있다고 말하게 했다. 다시 말하지만 통상임금 문제는 이 나라 노동자의 법정외근로와 법정수당의 문제이고 노동시간과 임금의 문제다. 통상임금 문제로 보면 모두가 노동자권리이지 노동시간은 사용자의 것이고 임금은 노동자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주고받을 수 있는 문제로 보는 것은 근로기준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 법정근로와 법정수당에 관한 노동자권리를 사용자를 위해 양보하라고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노동자권리를 짓밟고서 노동자에게 양보를 말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권리만 일방적으로 짓밟기 위해 사용하는 ‘기브 앤 테이크’는 협상이 아닌 강탈의 언어일 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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