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동이 존중받는 평등복지통일국가. 한국노총이 지난해 발표한 미래전략보고서에서 제시한 미래다. 김동만(54·사진) 부위원장은 계획만 세우고 실현하지 못한 그 미래를 직접 만들고 싶다고 했다. ‘노동운동은 곧 인간존중’이라고 믿는 그가 내년 1월 실시되는 한국노총 임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도전장을 던진 이유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개인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한국노총에서 10년간 정책업무와 대외협력업무를 맡으며 검증받은 실무력으로 한국노총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한국노총 부위원장으로서 지난 3년을 평가한다면.

“아쉬움이 크다. 상임부위원장을 맡은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다. 3년 전 이용득 집행부가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1차 투표에서 과반 지지를 얻으며 당선됐을 때 조합원들의 뜻은 명확했다. 개악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바로잡고 위축된 노동운동을 원상회복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의 큰 선거를 치러야 했던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노동정책은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지도부가 중도에 하차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용득 집행부 당시 한국노총이 펴낸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냈다. ‘한국노총 미래전략보고서’였다. 그는 "보고서로 끝나 버린 미래전략이 아쉽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노총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노동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100대 과제·17대 핵심과제를 선정하고 한국노총의 장기비전을 담은 미래전략보고서를 펴냈다. 비정규직을 어떻게 줄일까. 저임금·장시간 노동구조를 어떻게 바꿀까. 한국노총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모든 것을 담아 ‘노동이 존중받는 평등복지통일국가 건설’이라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런데 보고서만 만들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계획만 세우고 실천하지 못한 부분이 가장 아쉽다.”

- 최근 상임부위원장직에서 물러났는데.

“지난달 24일 국정감사 증인으로 참석한 것이 상임부위원장으로서 마지막 업무였다. 다음날 짐을 싸서 나왔다.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불필요한 논쟁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왜 나갔냐’는 진의를 둘러싸고 이제 와서 논란이 되는 것은 한국노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구의 탓을 할 문제가 아니다는 말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규약이다.”

김 부위원장은 상임부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이유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꼈다. 다만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상임부위원장 임명권을 부여한 규약은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노총 임원이라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집행부에서 갈등이 생기면 내부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소통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막혀 있다. 뜻이 맞지 않는다고 임원이 임기도 마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한국노총으로서 갖춰야 할 민주성에 부합하지 않는 규약은 고쳐야 한다.”

“노조법 개정 위해 전력질주”

- 통상임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노동시간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 등 굵직한 노동현안이 남아 있다.

"통상임금 문제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가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면서 수많은 수당들이 생겨났다. 지금의 임금체계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방향에 따라 편법으로 만들어진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노동계가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기 전이라도 노동계가 대안적 임금체계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해야 한다. 양대 노총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적 임금체계를 제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부터라도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

노동시간 법제는 근로조건 저하 없는 실근로시간 단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도를 확대하는 것은 이에 반하는 것이다.

특히 국회에 계류 중인 노조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것이 시급하다. 여당에서 김성태·최봉홍·이완영 의원안, 야당에서 김경협 민주당 의원안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안 등 각각 5개 법안에 발의된 상태다. 한국노총은 임원선거가 아니라 노조법 개정을 위해 전력질주해야 한다. 노동기본권을 확대하고, 전임자임금을 노사 자율에 맡기고,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노동계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경제민주화는 실종되고,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을 비롯한 노동자·서민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약들이 ‘빌 공자 공약(空約)’이 되고 있다. 집권하자마자 관료들을 우대하는 인사를 하더니 이제는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부당한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네북이 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하면서 노조말살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개전투로는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금도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공동투쟁을 하고 있지만 보다 큰 싸움을 벌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부가 공공·금융부문을 시작으로 전 산업에 구조조정과 임금체계 개편을 요구하면서 노동자에게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과거 역대 정권이 그랬듯이 노조말살 정책은 공공부문에서 시작해 민간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초기에 큰 싸움을 할 수 있도록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내부혁신으로 한국노총 일으켜 세워야”

김 부위원장은 지난달 상임부위원장에서 물러나면서 내년 1월 치러지는 한국노총 임원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굳혔다. 아직 실현하지 못한 한국노총 미래전략보고서를 품고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임원선거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한국노총 미래전략보고서가 나왔지만 집행부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항상 아쉬웠다. 한국노총이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부혁신으로 한국노총을 일으켜 세우고 싶다.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소통의 문제다. 내셔널센터의 본산이라고 하는 한국노총 내부에서 민주주의 절차가 무너지고 있다. 정부와 교섭을 하더라도 민주적 절차가 우선돼야 하는데, 한국노총에서는 민주적 절차가 아주 부족했다. 소통이 미약하면 조직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28년간 노동운동을 하면서 내셔널센터에서만 10년을 활동했다. 대외협력업무와 통일위원회 사업을 일구면서 민주노총을 포함해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만나서 대화하고 함께하기 위해 숱한 노력을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국노총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현장 노동운동의 중심에 한국노총이 서기 위해서는 청년·여성·비정규직·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고 가야 한다. 이러한 난제를 풀어 가려면 정책역량과 실무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누구보다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 이번 임원선거는 어떤 의미가 있나.

“전태일 열사가 가시고 43년이 흘렀다. 정권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노동자의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혹자는 노동운동이 대기업 노동자만의 운동으로 변했다고도 한다. 노동운동은 지금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노총 내부를 혁신해야 한다. 현장과 소통해야 한다. 현장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민주적으로 회의체를 운영하는 것은 내셔널센터의 기본이다. 도덕성과 회계의 투명성은 당연한 얘기다.

무엇보다 강한 의지와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관성적 조직운영이 되풀이되면 조직력이 약화되고 한국노총의 위상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산별연맹의 정책역량을 강화하고 지역본부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내셔널센터의) 일상적인 지원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간부들이 정기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하고, 사무총국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종적체계와 횡적체계가 유기적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새판을 짜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은 한국노총의 두뇌이자 자존심이다. 연구원을 확대·개편해 한국노총의 정책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사업계획만 겨우 하는 지금의 모습은 이노베이션과 거리가 멀다. 새벽은 연거푸 오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바로잡을 때다.”

- 왜 김동만이어야 하는지 설명해 달라.

“노동운동은 곧 인간존중이다. 계급 없고 차별 없는 세상은 사람을 존중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만드려면 한국노총이 바로 서야 한다. 소외계층을 보듬어 안고, 권력이 잘못됐을 때는 과감하게 앞장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노총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태와 민주주의 위기에 침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노총에서 다져지고 검증받은 실무력으로 한국노총을 한국노총답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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