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식 행정의 대명사는 이명박 정부다. 4대강 정비사업은 전형적인 밀어붙이기 사업이었다. 국토해양부가 이 사업의 총대를 맸고, 이명박 정부 임기 말에 공사를 완료했다. 건설회사 사장 출신의 대통령 밑에서 국토해양부는 유례없는 속도전을 벌인 것이다. 정비사업이 완료된 4대강에서 최근 녹조가 확산되면서 자연 파괴의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귀 닫고, 입 막고 공사를 강행한 후유증이 발생한 셈이다.

비난의 표적이 된 국토해양부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국토교통부로 이름을 바꿨다. 해양수산부가 분리된 탓이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이름만 바꿨을 뿐 일하는 관행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를 밀어붙이더니만 이번엔 철도에 손을 대고 있다. 이미 국토해양부(현 국토부)는 이명박 정부 임기 말에 철도 민영화를 추진했다가 실패한 바 있다. 그러자 국토부는 이 사업을 거창하게 작명했는데 이것이 철도산업 발전방안이다.

국토교통부가 마련한 방안을 보면 수서발 KTX를 운영하는 자회사를 만들되 코레일은 지주회사로 탈바꿈한다. 코레일에는 여객 운송을 남기되 물류·차량정비 등은 자회사로 변경된다. 일부 적자노선은 민간사업자에 넘기되 여의치 않을 경우 지방자치단체 등 제 3섹터가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국토부는 이런 계획을 연내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철도공사가 이사회를 열어 출자를 결의하면 수서발 KTX주식회사가 출범하는 경로를 밟겠다는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을 하듯, 국토부의 불도저식, 속도전 행정이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철도산업 발전방안은 국토부의 행정조치만으로 추진돼야 할까 아니면 국회의 논의를 거쳐 타당성을 검증받아야 할까. 국토부는 그간 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대해 동일한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철도산업 발전방안은 대통령에게 이미 보고한 사항이다. 재가를 받은 것이다. 수서발 KTX주식회사는 코레일(철도공사) 자회사로 출범하기에 법 개정 사안도 아니다. 국회에서 논의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9일 보도한 ‘철도산업 발전방안 국회의원 의견조사’에 따르면 여야 의원 대다수는 국토부의 이런 행보에 부정적인 의견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의 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대해 여야 의원 68%가 부정적 의견을 냈으며, 65%는 사실상 철도 민영화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그간 국토부는 철도산업 발전방안이 민영화 정책이 아니라고 강변해 왔는데 여야 의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또 국토부가 철도산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려 한 것과 관련해 여야 의원 74%는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때문에 여야 국회의원 81%는 사회갈등 해소를 위해 국회에 ‘철도산업 발전방안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국토부의 일방통행식 행정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행정조치만으로 철도산업에 경쟁체제 또는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여야 의원 모두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야 국회의원 대다수는 더 이상 폭주기관차가 된 국토부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한 셈이다.

이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야는 이 문제와 관련해 철도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철도노조는 지난 20일부터 쟁의행위찬반투표를 진행하며, 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반대하고 있다. 철도공사 이사회에서 수서발 KTX주식회사 출자를 결의하면 파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철도노조와 시민사회단체는 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대해 반대하는 100만명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국토부는 수서발 KTX주식회사 연내 출범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국회 검증부터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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