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군사정권 시절에는 고문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그 이후에는 각종 형사책임을 물어 노동운동가들을 전과자로 만들었다. 최근 몇 년간은 단연코 ‘전방위적 민사청구’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측·보험사 및 국가가 해고노동자들을 상대로 총 224억7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후 이를 이유로 조합원 개인 자산까지 가압류한 쌍용자동차. 경영부진으로 인한 광고매출액 감소까지 조합원 책임으로 떠넘긴 MBC의 상황은 널리 알려졌다. 최근에는 다른 기업들에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형사고소는 보조수단으로 이용하고, 개별 조합원에 대한 각종 민사청구를 최종적 압박수단으로 삼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민사청구 남발의 근본적 문제 중 하나는 입증방법 부재로 산업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 또는 사측의 책임까지 노동자들이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는 곳이 택시·화물 등 소위 ‘특수근로’ 사업장이다.

택시사업장의 경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의해 노동자가 운송수입금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회사는 납부받은 운송수입금에 기초해 노동자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이른바 ‘전액관리제’가 의무화됐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택시회사는 운송수입금 전액에 대한 4대 보험료·퇴직금 및 세금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여전히 하루 정해진 운송수입금만을 회사에 납부하도록 하는 사납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법망을 회피하기 위해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에는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는 것처럼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가 회사에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거나 자주적인 노조를 결성하면 회사는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노동자가 운송수입금을 전액 납부하지 않고 일부를 횡령했다며 운송수입금 반환청구 및 개인 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일삼고 있다. 그동안 회사에 줄기차게 전액관리제 시행을 요구해 왔으나 비용절감 등의 이유로 묵살당한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단체협약 등 외형적으로는 전액관리제를 실시하는 것처럼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노동자 개인이 실질적으로는 사납금제의 적용을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화물사업장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법적으로 대다수 화물노동자들은 화물운송업에 대한 개별허가를 받을 수 없다. 때문에 허가를 가진 회사에 지입 형태로 차량의 소유권을 이전해 화물운송업을 영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점을 악용해 회사는 일방적으로 지입료를 대폭 인상한다. 이에 불응할 경우 계약해지 및 거액의 미납 지입료 청구로 노동자들을 압박한다. 제대로 된 계약서 하나 받지 못한 화물노동자들은 회사의 어떤 주장이 허위인지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사용자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비대칭적으로 정보를 소유하고, 다시 이렇게 획득한 정보를 토대로 입증이 중요한 민사소송에서 본인들의 책임까지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도 계약법 원리 및 입증책임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노동자에게 거액의 채무를 부담시키는 판결은 계속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근로기본권은 자유권적 기본권으로서의 성격보다는 생존권 내지 사회권적 기본권으로서의 측면이 보다 강한 것으로서 그 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뒷받침이 요구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민사소송에서만큼은 많은 경우 이와 같은 원칙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들에게 민사소송법이 천명하는 ‘공평’의 원칙이 멀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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