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당면한 한국노총의 위기는 믿음의 위기입니다. 현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조직은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김주익(59·사진) 자동차노조연맹 위원장은 지난 14일 열린 연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위기의 한국노총에 희망을 드리기 위해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내년 1월 한국노총 임원선거에 도전장을 냈다. 김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내셔널센터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와 존중에 흠집이 생기고 있다”며 “중요한 조직의 결정에 현장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한국노총의 의사결정 제도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양재동 연맹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유비무환 자세로 노조법 개정 후유증 최소화"

- 자동차노련을 이끈 지 5년이 흘렀다.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5년은 자동차노련뿐만 아니라 한국 노동계의 격변기였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개정되면서 노동운동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법이 바뀌기 13년 전부터 예고됐던 변화다. 연맹은 변화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랫동안 대비해 왔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이탈이 있었지만 전체 버스노조 조합원의 3%도 되지 않았다. 현장에서도 혼란기를 잘 극복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전임자임금 문제는 유비무환의 자세로 대응해 어느 산별조직보다 안정적으로 해결했다. 재정자립은 노동조합에 있어 가장 중요한 토대다. 최근에는 변호사를 채용해 조합원들에게 종합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노총 산별조직에서는 처음이다. 이게 재정자립의 효과다."

김 위원장은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은 사람들이 삶을 사는 방편이자 노조가 존립할 수 있는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맹자가 말한 무항산 무항심은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또 "연맹은 오래전부터 기금을 모아 부동산을 매입하고 노조간부들의 임금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등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에 대비한 재정운영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강조했다.

- 자동차노련이 최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온갖 시련과 역경도 있었지만 굳건하게 반세기를 보냈다. 최근 조합원들과 같이 50년 생일을 축하하면서 앞으로의 50년은 무엇보다 운수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연맹도 그렇지만 그동안 사회 전체가 성장일변도로 달려왔다. 선진화된 사회는 구성원들이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느끼는 사회다. 버스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부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합원들이 공익종사자로서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이다. 운전직이라고 하면 사회에서 아직도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다. 조합원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연맹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보람을 느끼고, 정이 넘치며, 행복한 연맹을 만들 것이다."

"노동계가 나서 노동정책을 만들어 내야"

- 연맹 50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을 인용하면서 "노동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 경제"에 대한 꿈을 강조한 점이 인상 깊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고용정책은 있지만 노동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노동을 소외시키고 민주주의나 선진사회를 말할 수는 없다. 지난 1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공공기관 개혁을 언급했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공공적 서비스에 대해 정부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온갖 인심과 생색은 정부가 다 내고 공기업 병폐의 원인은 노동자 책임인 양 떠넘기고 있다. 비겁한 갑의 횡포나 다름없다."

노동계는 “박근혜 정부에 노동정책이 없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비판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노동계에서 박수를 받았던 정권이 있었느냐”고 반문한 뒤 “정부의 노동정책을 만들어 가는 것은 노동계의 몫”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노동계를 무시할 수 없도록 스스로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 통상임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근로시간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 등 굵직한 노동현안이 남아 있다. 하반기에 주력하고자 하는 사업은 무엇인가.

"통상임금 문제는 자동차노련이 처음 제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소송 중인 사업장의 70%가 버스운수업이다. 통상임금 갈등을 호되게 겪으며 버스회사 대부분은 호봉제를 도입하고 임금체계를 단순화했다. 현재 한국노동연구원과 함께 버스운수업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연구사업을 진행 중이다. 연구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내년 교섭에 대비할 예정이다."

"내셔널센터 의사결정구조 왜곡, 현장 불신 초래"

김 위원장은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한국노총 임원선거 출마의사를 밝혔다. 그는 "현장에서 한국노총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며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고 있는 한국노총을 위해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한국노총 임원선거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요즘 조합원들로부터 내셔널센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현장에서는 한국노총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노총 위기는 믿음의 위기다. 노동운동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조합원과 간부·지도자가 씨줄·날줄로 결합돼야 한다. 이런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신뢰와 존중이다. 원칙과 약속을 지킬 때 이런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 한국노총은 어떤가. 내셔널센터로서 지켜야 할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은 올해 상반기에 정부와 중요한 사회적 합의를 했다. 그런데 언론에서 발표되기 전까지 산별대표자들은 그 내용조차 모르고 있었다. 내셔널센터의 극소수 사람들이 모든 정보와 권한을 독점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정권의 이벤트로 전락시켰다. 현장의 불신이 폭발 직전에 이르게 된 배경이다."

김 위원장은 “조직은 사람과 시스템이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사람의 능력이 안 되면 제도로 뒷받침해야 하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람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의 참여가 확대될 수 있도록 제도를 확 바꿔야 한다. 사회적 합의 같이 조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은 대의원대회, 최소한 중앙위원회에서 승인을 얻어야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조합원수에 비례해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 있도록 대의구조를 손봐야 한다. 그래야 집행부의 권한 남용을 막을 수 있다. 현장의 참여 폭을 넓혀야 집행에도 힘이 실린다.”

"신뢰와 존중 받는 강한 한국노총 만들겠다"

- 왜 김주익이어야 하는지 설명해 달라.

“조직의 수장은 시대가 결정한다. 한국노총에 필요한 강력한 지도력은 개인의 카리스마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현장의 믿음이 뒷받침될 때 강력한 지도력이 나온다. 지금 한국노총은 현장 조합원의 뜻을 받들면서 추진력 있는 지도자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단위노조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30여년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조직을 만들어 왔다고 자부한다. 강한 조직력과 확실한 재정자립의 성과를 이룩했다. 한국노총이 지금의 재정구조를 유지하면서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확실한 재정자립 구조를 만들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맹 간부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현장에 가서 박수 받을 생각하지 말고 손가락질만 안 받도록 하라고 말한다. 손가락질 안 받으려면 신발 몇 켤레가 닳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대표자는 물과 같은 존재다. 집을 지을 때 모래와 자갈·시멘트가 모이면 물은 다 증발하고 단단한 조직이 된다. 그런 마음으로 한국노총을 위해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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