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식 변호사
(법무법인 공간)

대상판결 / 대법원 2012도11518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1. 들어가는 말


노조를 운영하거나 그에 참여하다 보면, 회사와 단체교섭을 하는 과정에서나 기타 노조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집회를 종종 개최하게 된다. 회사 밖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것이라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6조1항에 따라 그 목적·일시·장소 등 일정한 사항에 대해 그 집회 시작 전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러한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동법 제20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와 관련해 노조에서 일반인의 통행이 차단된 회사 내에서 집회를 개최해야 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신고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이러한 의문에 판단지침이 될 수 있는 대법원 판례가 최근에 선고됐는데, 자난달 24일 대법원 판결(2012도11518)이 바로 그것이다.

2. 본 사안의 개요

피고인들을 포함한 공소 외 유한회사(회사) 근로자 30여명은 근로시간이 아닌 자유시간을 이용해 2010년 2월7일과 24일, 3월3일과 10일·31일 각 오후 2시부터 오후 2시40분까지 미신고된 이 사건 집회에 참가하고 해산했다. 피고인들이 이 사건 집회를 개최한 장소는 회사 차고지 공터로서 외부인이 출입이 금지된 곳이며,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담장과 건물로 막혀 있고, 당시 그곳에는 회사의 영업에 이용되는 택시들과 사원들의 출·퇴근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피고인들은 회사에 대해 전북택시일반노조 ○○지부를 회사의 노조로 인정하고 단체교섭에 응할 것, 노조의 사무실을 제공할 것, 유류 보조금을 지급할 것 등을 요구하기 위해 이 사건 집회를 개최한 것이다. 한편 회사가 위 요구를 거부하자 피고인 1이 위원장으로 있는 노조는 회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응낙 및 간접강제 가처분신청을 했고, 이에 대해 법원은 ‘노조 ○○지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에서 설립을 금지하는 노동조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가처분신청을 모두 인용했다.

그 후 회사는 피고인들을 집시법 위반죄와 업무방해죄로도 고소했고, 담당 검사는 집회 당시 피고인들을 비롯한 집회 참가자들이 ‘투쟁가’라는 노래를 함께 부른 정도에 그치고 나아가 회사 업무에 특별히 지장을 초래한 바는 없다는 점을 고려해, 업무방해 부분은 기소하지 않고 집시법 위반죄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원심은, ‘일반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없는 장소’에서 열리는 옥외집회는 집시법 제6조1항 소정의 신고의무의 대상인 옥외집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다음, 위 차고지는 관계자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사유지임이 인정되므로, 집시법 제6조1항의 신고의무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무죄를 선고했고, 이에 검사가 상고했다.

3. 본 판결의 요지

이와 같이 집시법이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는 이로 하여금 일정한 사항을 사전에 신고하도록 규정한 취지는, 관할 경찰서장 등이 그 신고에 의해 옥외집회나 시위의 성격과 규모 등을 미리 파악해 적법한 옥외집회나 시위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옥외집회나 시위에 의해 타인이나 공동체의 법익과 충돌하거나 침해되는 것을 방지해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사전조치를 마련하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다.(대법원 2011.12.22 선고 2010도15797 판결 참조)

한편 집시법에 의해 보장 및 규제의 대상이 되는 집회란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이 공동 의견을 형성해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말하며(대법원 2012.5.24 선고 2010도 11381 판결 등 참조),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않은 장소에서의 집회는 설사 그곳이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닐지라도 그 장소의 위치와 넓이, 형태 및 참가인원의 수, 집회의 목적과 성격 및 방법 등에 따라서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집시법에 의해 보장 및 규제의 대상이 되는 집회에 포함된다.(헌법재판소 1994.4.28 선고 91헌바 14 결정 참조)

다만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근본이념과 앞서 본 집시법의 규정 내용 및 입법취지 등을 종합해 볼 때, 집회의 목적, 방법 및 형태, 참가자의 인원 및 구성, 집회장소의 개방성 및 접근성, 주변 환경 등에 비춰 집회 과정에서 불특정 다수나 일반 공중 등 외부와 접촉해 제3자의 법익과 충돌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예견가능성조차 없거나 일반적인 사회생활질서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설령 외형상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않은 장소에서 개최되는 집회라고 하더라도 이를 집시법상 미신고 옥외집회의 개최행위로 봐 처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략…

이러한 사실관계를 이 법리를 비춰 살펴보면, 이 사건 집회는 회사 구내에서 업무시간을 피해 매번 약 40분씩 한정된 시간 동안 개최된 것이고, 그 집회의 목적도 오로지 노조활동과 관련해 회사에 대한 요구사항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며, 집회장소가 회사의 안마당 주차장 공간으로서 옥외이기는 하지만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차단된 장소인 만큼 그곳에서 이 같은 목적과 규모 및 방법으로 집회를 개최한다고 해 인근 거주자나 일반인의 법익과 충돌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해를 끼칠 수 있을 것으로는 예견되지 않는 상황으로 보일 뿐 아니라 이는 일반적인 사회생활질서의 범위 안에 있는 행위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비록 이 사건 집회가 신고 없이 회사 구내의 옥외 주차장에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집회를 연 피고인들의 행위를 집시법상 미신고 옥외집회를 개최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해 처벌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4. 본 판결의 의의

본 판결의 의의는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 신장에 크게 기여한 판결로 집약될 수 있는데, 그 구체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 판결은 회사 내 구역 등 일반인의 통행이 자유롭게 허용되지 않아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위해가 없는 특정 장소에서의 옥외집회에 대한 집시법상 신고의무가 없음을 명확하게 판시한 것이다. 즉, ‘제3자의 법익과 충돌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예견가능성조차 없거나’ ‘일반적인 사회생활질서의 범위 안에 있는 장소에서의 집회’에 대해서는 그 신고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장소인지에 대한 판단과 관련해서는 ‘집회의 목적, 방법 및 형태, 참가자의 인원 및 구성, 집회장소의 개방성 및 접근성, 주변 환경’이 고려돼야 되지만, 그중 제일 중요한 판단요소는 집회장소의 개방성 및 접근성, 즉 일반 공중의 자유로운 통행 가능 여부일 것이다.

둘째, 본 판결은 상식적인 판단을 판결로서 확인한 것이다. 즉, 옥외집회와 시위에 대해서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집회 주최자가 집시법상 신고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데, 이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행정기관의 행정규제적 작용이다. 그런데 일반인의 통행이 자유롭게 허용되지 않아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위해가 없는 장소에서의 집회 개최에 대해서도 그 같은 신고의무 이행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행정규제에 해당한다고 본다. 또한 그러한 집회에 대해서는 통상 집시법상 신고의무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상식인데, 이 판결은 이를 확인한 것이다.

셋째,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않은 장소에서의 집회는 설사 그곳이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닐지라도 그 장소의 위치와 넓이, 형태 및 참가인원의 수, 집회의 목적과 성격 및 방법 등에 따라서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집시법에 의해 보장 및 규제의 대상이 되는 집회에 포함된다”고 판시한 위 91헌바14 결정으로 인해, 일반 공중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님에도,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옥외집회에 해당하고, 따라서 그 집회에 대한 신고의무가 있다고 실무에서는 운영돼 왔다. 그러나 이 판결로 인해 이 헌재 결정과 이에 기한 잘못된 실무 관행은 실질적으로 상당 부분 그 규범력을 상실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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