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한국에서 삼성전자 애프터서비스(AS)를 안 받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휴대폰·TV·냉장고·세탁기 등 생활필수 전자제품 절반 이상이 삼성전자 제품이다.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국내시장 점유율을 기록할 수 있는 핵심도 AS다. 애플 아이폰이 한국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가 삼성과 비교가 안 될 만큼 AS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세계 노트북 1위인 휴렛팩커드나 도시바가 한국에서만큼은 삼성에 적수가 안 되는 이유도 같다. 삼성전자 역시 이 강점을 자랑해 왔다.

하지만 삼성전자 AS 정책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 삼성전자가 자신의 시장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AS를 이용하는 소비자와 AS를 실제로 제공하는 서비스 노동자 모두를 수탈해 자신만의 곳간을 채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먼저 삼성전자는 한국 소비자에게 과도한 AS비를 청구한다. 이미 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됐듯이 삼성전자는 해외보다 국내에서 제품가격을 비싸게 받는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유는 한국에서만 제공되는 특별한 AS와 방문수리서비스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좀 과하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가 2011년 밝힌 한국 노트북만의 추가 AS비는 6만5천원으로 제품가격의 10%에 이른다. 스마트TV도 이런 식으로 계산해 보면 제품가격의 8%이고, 최근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스마트폰은 제품가격의 최대 27%까지 AS비로 책정돼 있다. 정확한 정보는 삼성이 공개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대략 제품가격의 10% 정도를 한국형 AS를 위해 책정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한국에서 휴대폰 및 가전제품을 17조원 정도 판매했으니, 대략 1조7천억원 정도를 AS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이 돈을 모두 AS를 위해 썼을까. 아니다. 실제 삼성전자가 삼성전자서비스를 통해 쓴 돈은 6천억원에 불과하다. 1조원 넘는 돈은 이익으로 챙겼다는 얘기다. 심지어 제품가격에 포함된 AS비로 충분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에도 소비자들에게 추가로 4천억원을 받았다. 무상수리 기간이 지났거나, 무상수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다.

제품가격에 포함된 비용과 소비자가 다시 지불한 AS비를 합하면 2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황당한 건 실제 삼성전자서비스 AS업무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도급 AS업체에 지급한 서비스대행료가 3천300억원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가 2조원을 걷어, 6천억원을 삼성전자서비스에 주고, 삼성전자서비스는 또 여기서 절반 조금 넘는 3천300억원만 도급업체에 줬다. 참고로 삼성전자서비스 전체 종사자의 88%가 간접고용된 도급업체 직원이고, 서비스센터의 96%를 도급업체가 운영한다. 돈의 흐름만 두고 보면 소비자에게 지급받은 돈 중 실제 서비스를 위해 쓴 돈은 20%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최종범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에 알린 내용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서비스 엔지니어의 90%에 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배고파 살지 못할 정도의 임금만 주고, 사람이 도저히 제정신으로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강도로 일을 시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1조원이 넘는 수익을 한국에서 별도로 AS 관련해서 올릴 수 있는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불법파견 상태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이용하는 방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선 급여체계부터 황당하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제품수리 유형을 나눠 이에 대한 표준수리시간을 정해 놓고, AS엔지니어의 노동시간을 분(分) 단위로 측정해 임금을 지급한다.

건당 수수료 형태로 지급되지만 실내용은 분(分)급제 체계다. 분당 225원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의 임금이다. 수리 이후 고객과 상담을 한다든지, 수리시간이 길어져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온다든지, 수리 중 예상치 못한 고장이 발견되면 노동자가 무료로 처리해야 한다. 분 단위로 노동시간을 나눠 놓다 보니 서비스 노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간접노동시간이 모두 무급으로 처리된다.

그런데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이런 무료노동을 하지 않으면 고객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아 최종범 조합원이 사장에게 들었던 것 같은 쌍욕을 들어야 하고, 급여삭감이나 해고를 당하기도 한다. 고객평가로 무료노동을 강요하는 셈이다.

도급업체 사장들은 한술 더 뜬다. 삼성전자서비스가 그나마 짜게 지급하는 노동자 몫의 수수료를 착복한다. 삼성전자서비스와 도급업체는 매우 기형적인 거래계약을 맺는데, 노동자들의 사회보장비는 물론이고 야간수당이나 휴일수당도 건당 수수료에 포함시켜 놓았다. 도대체 노동자 몫이 얼마인지, 업체 몫이 얼마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어 놨다. 업체 사장이 마음대로 돈을 가져가도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얼마를 받았는지 알기 어려운 구조다.

삼성전자가 이익으로 남기는 돈 가운데 5천억원만 사용해도 도급노동자 전체를 직접고용할 수 있다. 나머지 돈으로 소비자들에게 가격 인하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최종범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벌써 20일이 넘어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