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이 위헌심판을 받는다. 지난 5일 정부는 통합진보당 강령 중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했다. 법무부는 청구서에서 “통합진보당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된 세상을 향하여’라는 강령 제목을 제시하면서 전문에 ‘통합진보당은 노동자·농민·중소상공인 등 일하는 사람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대변하는 정당이며 그들의 지혜와 힘을 모아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을 열어나갈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민중이 정치경제 사회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에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기재했다. 계속해서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의 강령해설 자료집에서는 ‘현 사회는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된 사회가 아니라 소수 특권 세력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사회다, 이것은 분명히 거꾸로 된 사회다’라고 현실을 평가하고 있”으며, “위 강령해설 자료집에는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에 대해 ‘정치·경제적 특권들이 완전히 물러나고 일하는 사람들(민중)이 정치권력의 실질적 주인으로 되는 권력체제’ ‘현재 특권세력들이 독점하고 있는 입법·행정·사법 주권을 민중들이 되찾아 온 새로운 정치체제’ ‘실질적으로는 특권 세력들이 주권을 독점하는 박제화된 국민주권원리의 한계를 타파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정치경제적 주권을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민중주권원리가 구현되는 새로운 정치체제’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기재했다. “이와 같이 통합진보당이 추구하는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된 세상’을 추구하는 민중주권주의는 ‘모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주권론을 배척하는 위헌”이라고 대한민국 법무부는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서에서 썼다. 다음날인 6일 조선일보 기사에서 허영 교수는 "통합진보당이 말하는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나라'는 일부 노동자 계급만 해당되는 배타적 개념으로, 모든 국민을 포함한 다수에 의한 자치를 추구하는 우리 헌법에 배치된다"고 말했다.

2. 헌법학자 허영 교수의 말로 살펴보자.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나라'는 일부 노동자 계급만 해당되는 배타적 개념으로, 모든 국민을 포함한 다수에 의한 자치를 추구하는 우리 헌법에 배치된다고 그는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이걸 강령 목적으로 하고 있는 통합진보당은 모든 국민이 주인 되는 대한민국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주의에 반하는 위헌정당으로 헌법재판소에서 심판받게 될 것이다. 이런 거였나.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이 노동자 등 일부계급만 배타적으로 주인이 되는 세상이라는 거였나. 저 80년대부터 거리와 광장, 노조사무실에서 들어 온 나는 그런 거창한 세상이었던 거였냐고 지금 놀라고 있다. 정말 노동자 등 민중독점의 권력과 소유의 나라였냐고.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이 아니라 그보다 더 협소하고 노골적으로 이 나라에서 노조는 노동운동은 수십 년째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외쳐 왔다. 민주노총 나아가 심지어 한국노총 사업장조차도 지금도 줄기차게 노동자집회장이나 조합원총회장에서 위원장의 웅변에 조합원들은 박수치고 있다. 어디 이 나라뿐이겠는가. 노조운동이 정치세력화해서 노동자 이해를 대변하는 당, 노동자당이든 사민당이든 사회당이든 그런 당을 만들어 활동하는 나라들은 어디서나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노동자들에게 외쳐서 노동자표를 달라고 호소해 왔다.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나라라고 강령 목적에 새겨두고 활동하는지 여부를 떠나서 이 세상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이 오매불망 꿈꾸는 세상이다.

3. 오늘 대한민국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이 문제다. 지금 일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일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주인으로 행사하고 있는가. 아니다. 일하는 사람, 노동자는 사업장에서 주인이 아니고 주인인 사용자에 복종해서 일하는 세상이다. 누가 이걸 감히 부정하겠는가. 그래서 사용자와 같이 노동자도 주인으로 취급되고 일하고 싶은 것이 노동자의 바람이다. 일하는 사람, 노동자는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을 차지해서 행사하고 있는 주인도 아니다. 누가 지금 이 나라에서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한 대한민국정부의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노동자를 대변하는 권력이라고 하겠는가. 그래서 노동자는 대한민국의 권력이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걸 노동자대표가 권력을 행사하는 거라고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외쳐 왔다. 새누리당이 민주당이 일하는 사람, 노동자의 당인가. 노동자 이해를 앞세워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당은 아니다. 국민정당, 이것이 오늘도 그들 정당이 표방하고 있는 당의 정체성이다. 그래야 보다 많은 표를 확보할 수 있어서 일수도 있고, 그래야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정당으로서 자신의 지역표를 확고히 다질 수 있어서 일수도 있다. 어쨌든 일하는 노동자를 중심에 두고 나라의 정책을 만들어 집행하겠다는 당이 아니다. 수많은 정책이 노동자 이해를 반영하지 못하고서, 오히려 경제성장이니 뭐니 해서 기업을 중심으로 사용자 이해를 반영해서 만들어지고 집행돼 왔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 노동자정당을 만들어서 대한민국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집권해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겠다는 거다. 이것 말고 지금 이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강령은 무엇일까.

4. 통합진보당의 역사, 민주노동당 때부터 선거를 통해서 집권하겠다고 창당했다. 노동자,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공약으로 내걸어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달려왔다. 이를 위한 강령이고 활동목적이었다. 아무리 포장해도 국민주권주의 등 민주공화국의 기본원리에 따른 대한민국헌법의 질서에서 일하는 사람, 노동자를 대변해서 활동하고 집권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 말이 헌법질서 내에 가둬두고 있다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분명히 이 나라에서 민주노동당으로 정치세력화하면서 별 수 없이 전제로 하고서 출발한 거였다. 그것 때문에 이런 노동자정치 세력화가 맞느냐고 노동운동 내 논란을 벌여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논란에도 그 길을 가겠다고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하며 노동자 이해를 대변하는 당을 만들었고 통합진보당의 전신이라 할 민주노동당이었다.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은 죄가 없다. 대한민국헌법이 선언한 정당제도, 선거제도, 국민주권주의 등 민주적 기본질서 틀에 철저히 갇혀있는 정당의 강령 목적이다.

“1.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 구조를 확립하고 국가권력기구를 민주적으로 개편한다, 2. 공직비리수사처를 신설하며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기소권을 분할하는 등 검찰개혁 및 사법제도 개혁을 확고히 추진한다, 3. 정치 혁신을 위한 대선 결선 투표제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등 민중주권 보장을 위해 정당법과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며, 예산과 정책 결정 등에 대한 시민의 참여와 감시를 제도화해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한다, 4. 한국정치의 고질적 문제인 계파정치와 지역주의를 청산하고 당원이 주인 된 정당민주주의를 확립한다. … ” 통합진보당이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된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만들 세상’이라며 제시한 구체적인 강령이다. 통합진보당의 정치과제는 소심하게도 이런 것들이다. 대선 결선 투표제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민중주권 보장을 위한 방안으로 들고 있다. 위헌으로 시비하기엔 통합진보당 강령에서 민중주권은 너무도 가볍다. 어느 강령조항에서도 특권세력의 선거권·피선거권 등을 박탈하고 노동자 등 일하는 사람들만 행사하는 정치체제를 내세우고 있지 않다. 삼권분립, 국가기구의 민주적 개편, 검찰과 사법 개혁, 대선 결선투표제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등 정당제도와 선거제도 개혁, 정당민주주의 확립 등 대한민국헌법이 선언한 민주적 기본질서를 보다 실질적으로 실현해 내겠다는 과제들을 강령으로 하고 있다. 새누리당·민주당 등 기존 정당이 대한민국헌법의 국민주권주의·민주적 기본질서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지 못하다며 구체적인 강령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강령에서 정치체제와 관련된 조항들은 도무지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된 세상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조차도 알기 어렵다. ‘무색무취’ 민주당도, ‘개혁적인’ 새누리당조차도 강령으로 내세워도 될 조항들이다. 통합진보당의 진보정책연구원이 지난해 8월 발간한 통합진보당 강령해설 자료집에서 현재 강령의 정치편을 두고서 민중주권주의 운운했다면 과장된 해설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권위 있는 자의 말이라도 해설로는 강령조항을 바꾸지 못한다. 같은해 5월 당의 강령개정위원회와 전국운영위원회를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통합진보당의 현 강령이 적법한 당내 절차를 통해서 개정되기 전에는 강령으로 선언한 통합진보당의 목적은 대한민국헌법이 선언한 국민주권주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볼 수가 없다.

5.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헌법교과서에 쓰여 있듯이 인민주권와 국민주권의 논의는 국민이 인민이 스스로 권력을 행사할 것이냐 대표로 행사하도록 할 것이냐 하는 것일 뿐, 일하는 사람이든 누구든 주권자가 아니라고 그에게서는 권력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대표주의 국민주권만이 합헌이고 직접주의 인민주권은 당연히 위헌인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전자는 자본주의정치고 후자는 사회주의정치인 것도 아니다. 그러니 통합진보당의 민중주권을 인민주권이라고 보고 제기하는 위헌 주장은 인민주권은 곧 위헌이라는 부당한 전제에서 서 있다. 인민주권이든 국민주권이든 인민과 권력의 관계를 규정짓기 위한 것이고 그것은 인민의 자기지배라는 민주주의를 전제하고 서 있는 것이다.

노동자, 일하는 사람도 주권자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그에게서도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라면 노동자,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을 그의 대표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설사 통합진보당이 말한 민중주권이 인민주권이라 해도 선거제도·정당제도·삼권분리을 전제로 하고서 말하는 인민주권은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가 정치적으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노동자, 일하는 사람이 부르는 헌법 제1조의 절절한 노래라고 들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