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또 해결사로 나섰다. 서울행정법원은 13일 전교조가 제기한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의 효력은 1심 판결 선고시까지 정지됐다. “현행법을 대놓고 어긴 전교조는 법적 보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노동부는 체면을 구겼다.

언젠가부터 노동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법원이 노사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현실을 봐도 그렇다. 최근 노사관계를 뒤흔든 사건 뒤에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서 2년 이상 근로한 최병승씨에 대해 현대차에 파견근로를 제공해 왔으므로 현대차에 직접고용된 상태라고 확정 판결했다. 나아가 현대차가 이러한 근로관계를 부정하면서 최씨의 사업장 출입을 막고 노무를 수령하지 않은 것은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꺼져 가던 간접고용 정규직화 투쟁의 불씨를 살렸다. 간접고용 문제는 가장 뜨거운 노동이슈로 떠올랐다.

올해 최대 노동현안인 통상임금 문제도 지난해 3월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됐다. 금아리무진 노동자들이 낸 임금소송에서 법원은 고정적·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우리 사회에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사회적 논의를 촉발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나마 법원이 있어 다행이라고 위안할 일인가. 노동부에 따르면 11월 기준으로 올해 파업발생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줄었다. 근로손실일수는 48.1% 감소했다. 하지만 이를 노사관계 안정화의 지표로 해석해선 곤란하다. 보수정권하에서 ‘파업 한 번에 패가망신’이라는 학습을 톡톡히 한 노조들은 웬만해선 파업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뿐인가. 멀쩡히 활동해 온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하루아침에 박탈하는 정부를 보고 있자니, 더 이상 노사갈등의 중재자나 공공부문 사용자로서 공정한 역할을 기대하기는 글렀다. 이런 상태에서 서울행법의 결정이 나왔다. 노동 3권을 교란하는 당사자가 정부라는 사실이 사법부의 입을 통해 공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부끄럽지 않은가.

법원의 판결에 일희일비하는 노동계의 현실도 안타깝다. 법원의 판결에 기대어 노동운동을 연명해 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능동적 구호와 실천으로 민중을 각성시켰던 전태일의 후예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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