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사발전재단

“네덜란드의 기적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치솟는 실업률로 복지국가 기틀이 흔들리던 1980년대 초반 여성들이 스스로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한 것이 고용증대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고용률을 높이겠다는 강력한 의도를 갖고 그 수단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출발점이 다르다.”

루디 윌러(53·사진)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교수(사회학부)의 말이다. ‘시간제 일자리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온 윌러 교수는 “시간제 일자리가 노동시장에 정착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사회적 변화를 이끌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정부의 역할은 공공부문 또는 준공공부문의 시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는 사용자로서 차별을 근절하고 각종 보호법규를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한국에서 말하는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가 정착되도록 조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윌러 교수는 노사발전재단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개최한 ‘시간선택제와 일-생활 균형’ 국제세미나 참석차 방한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날 오전 국제세미나에 앞서 그를 만났다.

-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는 한국에서도 주요한 과제다. 한국 정부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기반으로 한 네덜란드의 시간제 일자리 모델을 벤치마킹하려 한다. 네덜란드 시간제 일자리의 특징은 무엇인가.

“네덜란드의 근로가능인구 중 38%가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특징은 ‘시간제에서 전일제로, 다시 전일제에서 시간제로’의 전환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시간제가 발달하는 산업이 종사자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모든 산업에 두루 시간제가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업이나 요식업, 공공부문이나 준공공부문에 시간제가 집중돼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네덜란드 하면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이 먼저 떠오른다. 시간제 일자리가 정착하는 데 사회적 대화가 어떤 기여를 했나.

“82년 11월24일 체결된 바세나르 협약의 주요 내용은 '노동조합은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기업은 노동시간단축을 허용하는 교환을 통해 경제를 회복시키고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심각한 경제위기로 실업자가 증가하고 복지국가 기틀이 흔들리던 때 나온 합의다. 그런데 바세나르 협약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에 실망한 노사가 절충안으로 제기한 것이 시간제 일자리였다.”

- 시간제 일자리 도입 당시 노동계의 반발은 없었나.

“당시 여성 근로자들은 노동시장 진입을 강력하게 원했다. 하지만 전일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일자리가 필요했던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간제에 부정적이었던 노동계가 입장을 바꿨다. 임금인상 억제를 포함하고 있는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한 뒤 입지가 줄어들었던 노동계는 여성 시간제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교섭의제에 포함시키면서 영향력을 되찾았다.”

- 네덜란드는 안정적인 사회적 합의와 강력한 사민당, 노동권에 대해 우호적인 사회적 기준이 작동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부가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의 권한을 박탈해 논란이 거세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바세나르 협약 당시 네덜란드는 사민당 정권이 아닌 보수당 정권이었다. 당시 정부는 노사가 어떤 내용으로 합의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노사가 합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노사합의를 토대로 최대한 많은 근로자를 노동시장에 진입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였다. 정규직과 차별이 거의 없는 시간제 일자리를 위한 법제화는 90년대 들어서야 이뤄졌다. 시간제 일자리가 노동시장의 관행으로 정착된 뒤 법제화가 이뤄진 것이다.”

- 시간제 일자리 정착을 위해 네덜란드 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나.

“정부는 공공부문 또는 준공공부문 시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는 사용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라고 부르는 괜찮은 시간제 일자리는 주로 공공부문에서 만들어졌다. 정부는 법제화 등을 통해 시간제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시간제 일자리 정착에 기여했다.”

- 한국에서는 시간제 일자리와 관련해 두 가지 방안이 경합하고 있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 적합업무를 발굴해 인력을 채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반해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전일제→시간제→전일제’ 전환이 가능한 직무를 재설계하자는 입장이다.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 두 가지 옵션으로 구분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결과적으로 두 번째 옵션을 따랐다.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시간제에 뛰어들었고, 사용자들이 그 장점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관행이 만들어졌다. 만약 적합업무 신설이라는 첫 번째 옵션을 따른다면, 시간제 일자리를 특정업무로 한정한다는 말이다. 이를 ‘전일제→시간제→전일제’로 변환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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