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헌법 8조 4항이 문제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대한민국헌법 제8조 제4항). 그래서 통합진보당은 심판받아야 하는 거라고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제소했다.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다. 민주적 기본질서가 문제다. 그것이 무엇이냐에 통합진보당의 운명이 달려 있다. 법무부에서 문제 삼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속하는지 그것을 강령 목적으로 해서 활동한다는 통합진보당의 생사가 달려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진보적’이 뭐라서 이렇게 추상적이고 몽롱한 수식어를 민주주의 앞에다 붙여 놓았을까. 지금 이 세상의 민주주의가 보수적이라는 전제에서 그보다 더 나아간 민주주의를 해보겠다는 것이겠다. 한걸음인지 열 걸음인지 그것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게 하는 말이다. 이 민주주의가 대한민국헌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내게는 아리송하기만 하고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겠다고 읽히는 이 민주주의가 대한민국헌법에서 정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그걸 정당의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 심판하겠다고 대한민국정부는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2. 통합진보당은 강령에서 “노동자·농민·중소상공인 등 일하는 사람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대변하는 정당이며 그들의 지혜와 힘을 모아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열어 나갈 것”이라며,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민중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2012년 5월12일 개정 강령). 이렇게 통합진보당 강령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는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과 함께 말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의 민주주의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것인지, 아니면 진보적 민주주의를 구현해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둘은 이렇게 하나의 강령 문장에서 말해지고 있다. 노동자,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은 이 나라 노동운동이 수십 년 동안 외쳐 온 구호였다. 그러니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오늘, 이 나라 노동운동은 대한민국헌법이 선언한 민주적 기본질서에 무심할 수가 없다. 위헌의 구호가 될지 모른다.

3. 지금은 민주노총이 지지방침을 철회했지만 통합진보당의 전신, 민주노동당은 이 나라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주노총이 주도해 만든 당이었다. 2000년 1월30일 창당하면서 민주노동당은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사회주의적 가치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창조적 실천을 통해 진보정치를 구현할 것”을 강령으로 하고 있었다.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논란이 됐고 지난해 5월12일 임시당대회에서 ‘사회주의’ 표현부분을 삭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로 하는 강령이 채택됐다. 그 사이 2009년 6월21일 제1차 정책당대회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를 뛰어넘어 실질적 내용적 민주주의를 보장하며, 정치적 민주화를 뛰어넘어 경제적 민주화를 달성하며, 간접 민주주의를 뛰어넘어 직접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내용이 담긴 결의문을 채택했다. 보다 실질적인, 보다 많은 민주주의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계급문제와 민족문제 중 무엇을 우선 순위에 두느냐를 두고서 세력을 달리해 대립했다. 분당과 합당 과정에서 강령에서 ‘사회주의적 가치’는 당내 세력변화에 따라 삭제되고 진보적 민주주의로 변경됐다. 당시 강령 개정을 주도한 세력이 노동자정당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계급세력을 기반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노동자중심의 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의 유지 여부를 떠나, 이 시점에서 통합진보당으로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전환한 것이다.

4. 강령 내지 강령의 변화를 두고서 보면 무엇이 위헌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설사 민주노동당의 창당 당시의 강령과 같이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사회주의적 가치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창조적 실천을 통해 진보정치를 구현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대한민국헌법이 선언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계승할 사회주의적 가치가 무엇이냐, 그리고 창조적 실천을 통해서 구현하게 될 진보정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위헌정당이냐가 심판될 문제였다. 당시 구체적인 강령상의 목적으로 볼 때는 위헌정당으로 심판될 민주노동당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마저도 삭제하고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강령으로 내세웠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호하지만 정책당대회에서 결의한 대로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를 뛰어넘어 실질적 내용적 민주주의를 보장하며, 정치적 민주화를 뛰어넘어 경제적 민주화를 달성하며, 간접 민주주의를 뛰어넘어 직접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의미라면 이건 그야말로 20세기 말 21세기 초 헌법교과서에서 해설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를 진보적 민주주의라고 결의했다는 거다. 거창하게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하는 진보의 당에서 뭔가 새로운 민주주의인 거라고 결의했다는 것이다. 불온하지도 새롭지 않은 민주주의다. 대한민국헌법이 선언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수가 없는 민주주의다. 그것으로 어떻게 노동자,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헌법교과서는 대한민국헌법이 그걸 지향하는 있고 이미 일부는 구현되고 있다고 해설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일하는 사람은 오늘 주인이 아닌 것인지 세상이 이상한 것인지 그 민주주의가 이상한 것인지 나는 이상하기만 하다. 그러니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결의한 대로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사실은 다른 의미의 것이었다고 다른 정책당대회나 임시당대회 등에서 결의했다고 입증되지 않는 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강령 목적만으로 위헌정당이라고 결정할 수가 없다.

5. 위와 같은 진보적 민주주의, 그것은 아무리 포장해도 국민주권주의 등 민주공화국의 기본원리에 따른 대한민국헌법의 질서에서 진보의 당으로 활동하고 집권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혹시 이런 내 말이 이 나라의 진보정당운동을 헌법질서 내에 가둬 두고 있다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분명히 이 나라에서 민주노동당으로 정치세력화하면서 별 수 없이 전제로 하고서 출발한 거였다. 그것 때문에 이런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맞느냐고 노동운동 내 오랜 논란을 벌여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논란에도 그런 길을 가겠다고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하며 노동자 이해를 대변하는 당을 만들었고 그것이 통합진보당의 전신이라 할 민주노동당이었다. 도대체가 진보적 민주주의는 죄가 없다.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사회주의적 가치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창조적 실천을 통해 진보정치를 구현하겠다고 한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도 역시 죄가 없다. 대한민국헌법이 선언한 정당제도, 선거제도, 국민주권주의. 민주적 기본질서 틀에 철저히 갇혀 있는 정당의 강령 목적이다. 진보의 당이기에 내세워야 하는 민주주의일 뿐이다.

6. 자본의 세상은 시민혁명 이후 민주주의와 함께 한 쌍으로 돌아가고 있다. 수많은 학설과 판결, 논설이 오늘도 이 세상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운명을 끌고 가는 지배의 말은 언제나 단 하나의 결론을 가지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라고, 시장의 자유처럼 민주주의도 자유여야 한다고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한다. 민주주의의 경제는 자본주의고, 자본주의의 정치는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이런 지배의 언어로 읽어도 통합진보당 강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불온하지 않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갈 수 없다고, 민주주의의 경제는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지 않다.

자본의 세상에선 자본의 확대재생산은 자본 스스로 지배력을 행사해서 원칙적으로 정치와는 구분돼서 작동한다. 여기선 소유가 주인이다. 철저히 소유의 크기에 따라 권력이 배분된다. 인민이 스스로 주인이 돼서 결정하고 행동한다는 민주주의가 끼어들 수 없다. 끼어드는 걸 허용하는 순간, 사람의 수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순간 자본의 세상은 종말을 고한다. 자본의 세상에선 민주주의는 정치의 일이다. 자본을 떠난 권력의 영토, 국가권력의 행사에서 민주주의를 말한다. 본디 권력은 생산자가 아니었다. 왕은 약탈자였다. 조세와 부역이 그의 생존방식이었다. 자본이 소유(화폐)의 기술이라면 권력은 무기의 기술이었다. 인민은 무기를 빼앗고 왕을 몰아냈다. 왕을 추방한 왕좌에 누군가 개인을 앉힌다면 그는 또 다른 왕일뿐이다. 어느 계급이나 세력이 특권적으로 계속해서 왕좌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이름이 바뀐 특권계급의 귀족정일 수 있다. 왕좌는 어느 누가 어느 계급 내지 세력이 독점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공화국은 민주주의를 선언했다. 민주적 기본질서를 헌법에 명시했다. 민주공화국이었다. 선거로 인민은 권력을 선출했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는 인민의 자유 의지를 짓밟고 선거를 형식적인 것으로 전락시켜 다시 어느 개인이 권력을 독점하고, 어느 계급이나 세력이 공화국의 권력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행사하도록 독점하는 것으로 전개됐다. 국가권력은 인민의 공유여야 한다는 공화국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것이고 그것은 민주공화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그걸 강령 목적으로 활동하는 정당은 위헌정당으로 해산 결정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보다 많은 민주주의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짓밟는 정당을 심판하기 위해서 도입됐다. 이 세상에서 일하는 사람, 노동자의 손에 든 민주주의는 적다. 그가 일하는 작업장은 민주주의를 모른다. 그가 투표하는 투표소는 민주주의라며 그를 오라 하지만 투표로 선출된 권력은 아직 이 나라에서는 그를, 노동자권리를 외면하고 있다. 그러니 진보적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노동자에게 보다 실질적이고 보다 많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이라면 민주공화국에선 위헌이라고 결정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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