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청소노동자에게 정의를’(Justice for Janitors) 운동은
전미서비스노조(SEIU)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청소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 1985년부터 전개한 운동이다. 미국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건물을 소유한 부동산업체의 대형화와 하청화가 증가했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반토막 나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노조 조합원들은 급감했고, 조합원도 비정규직인 히스패닉계 이주노동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위기의식을 느낀 SEIU는 노동자 조직화와 함께, 청소용역업체가 아닌 원청인 대형 부동산 소유주를 대상으로 투쟁을 진행했다. 그 결과 2003년부터는 노동자 조직률과 임금을 대부분 원상회복했다. 80년대 초반 많아 봤자 60만명이었던 SEIU 조합원은 현재 210만명으로 급증했다.

‘노동조합 도시’(Union City) 운동은

미국노총(AFL-CIO)이 1996년부터 노조 조직 확대를 위해 진행한 운동이다. 미국의 주요 대도시를 설정해 우리나라 총연맹의 지역본부·지부에 해당하는 지구조직이 주도했다. 해당 지역의 산별노조도 인력과 재정을 집중했다. 특히 지역의 시민운동단체와 함께 노동자들의 자녀교육·주거·일자리·생활임금 문제에 연대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낳았다. 600여개의 미국노총 지구조직 중 4분의 1이 참여했다. 전체 조합원의 절반 이상을 대표하는 규모였다. 미국노총의 노조운동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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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과 날줄의 인연이다. 남편은 산별노조 운동, 아내는 지역노동 운동의 대가다. 때로는 논쟁을 하고 때로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돼 왔다.

“한국 노동계도 산별노조 운동과 지역노동 운동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그래서 우리가 결혼한 것”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전미서비스노조(SEIU)의 청소노동자 조직화 사업인 ‘청소노동자에게 정의를’을 총괄기획한 스테판 레너(55)씨. 그의 아내로서 미국노총(AFL-CIO)의 ‘노동조합 도시’ 운동을 주도한 마릴린 스나이더만(57)씨. 두 캠페인 모두 산별노조 운동과 지역노동 운동이 결합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지난달 29~31일 공동주최한 전태일 열사 기념 국제 심포지엄 참가를 위해 방한한 두 사람을 <매일노동뉴스>가 만났다.

“두 사람의 경험을 지면에 소개해 한국 노동운동가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이병훈 중앙대교수(사회학)의 제안으로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이 교수 연구실에서, 이 교수의 통역과 사회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병훈 : 각자 주도한 운동이 성공한 비결을 말해 보자. 한국 노동운동가들이 많이 궁금해 한다.

스테판 레너 : 전통적인 임금·단체협상과 파업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진행했다. 시민들과 조합원들을 함께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미국에서도 노조는 언론이나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불평등을 바꿔나가는 운동을 통해 청소노동자들을 조직했다. 정치인과 지역사회단체 등의 사람들을 움직여서 정확하게 타격할 곳(건물 소유주)을 찾았다.

이병훈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운동 등을 보면 한국 노동운동도 타깃을 잘 잡아 투쟁한다. 하지만 성과를 내기는 아주 어렵다.

레너 : 파업이나 피케팅 같은 단선적인 투쟁으로는 어렵다. 원청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원청에 대한 모든 것을 뒷조사를 하듯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마치 탐정처럼 꼬치꼬치 캐야 한다. 현대차를 예로 들어 보자. 기업이 미국 내에 신규투자를 하려면 그 지방자치단체에서 행정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대차가 미국에 공장을 지으려고 하면 지자체와 지역 정치인을 움직여 개입하고 압력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노조와 연대하면서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원청이 하청노동자들을 값싸고 유연하게 사용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더 큰 비용이 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마릴린 스나이더만 : 지역연대 경험이 풍부한 분들을 모아 노동조합 도시운동을 시작했다. 산별노조 차원의 운동과는 다른 움직임이었다. 해당 지역의 노조대표를 모으고 시민단체·종교단체들과 함께 교육·실업·주거문제 해결을 논의했다. 미국의 산별노조들도 지역연대 운동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던 시기였다. 미국노총의 지구조직들이 산별노조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렇게 노동운동을 부활시키는 일을 지역에서부터 시작했다. LA 등 일부 지역에서는 산별운동과 결합하면서 성과들이 가시화됐다.

이병훈 : 산별노조들이 재정을 부담하거나 모으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설득했나.

스나이더만 : 미국에서도 산별노조들은 지역조직화에 대해 관심이 적었다. 왜 돈을 내야 하는지, 왜 활동가들을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해당 산별노조 지도자들을 노총에 불러 모아 지역운동에 대한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합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미국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으니 특정 도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판을 짜자고 호소했다. 이어 산별지도자들과 동행해 해당 지역으로 내려가 산별노조 소속 조직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노동운동 ‘필요할 때만 연대’ 안 돼

이병훈 : 지역운동과 산별노조 운동의 조화는 한국 노동운동도 오랫동안 꿈꿔 온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하면 되나.

이 질문에 스나이더만씨는 “산별운동과 지역운동을 조화시키기 위해 결혼한 것 아니냐”며 남편을 바라봤고, 부부는 폭소를 터뜨렸다.

스나이더만 : 산별노조는 나름대로 산별운동을 추구하는데 자기 논리에만 집착하면서 다른 운동들이 소외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지역운동에 대한 무관심이) 산별운동 스스로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지금은 지역차원의 노동연대, 언론·시민과의 연대를 추구하는 쪽으로 인식이 전환됐다.

이병훈 : 노조는 자기들이 필요할 때에만 시민단체 등에게 도움을 청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식의 연대가 되다 보니 잘 안 되는 것 같다.

레너 : 어느 나라나 존재하는 현상이다. 항상 함께 싸우고 활동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고받기식 연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노조는 자기들 문제로 파업할 때에 시민·사회단체에게 머리수를 채워달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제대로 연대할 수 없다. 평소 각자의 활동을 하다가도 공동의 목표가 서면 다시 모여서 함께하는 것이 맞다. 전미서비스노조의 청소노동자 조직화도 이런 방식을 통해 성공한 것이다.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관심사가 워낙 이질적이었다. 고민한 끝에 돈을 긁어모으면서도 세금은 적게 내는 은행과 부동산재벌을 공동 타깃으로 삼았다.

스나이더만 : 노동조합 도시운동을 할 때에 휴스턴에서는 노조 지도자들과 지역의 교회·사회단체 지도자들이 연석회의를 했다. 가장 시급하게 개혁해야 할 지역 의제를 결정했다. 이슈와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함께 활동을 하면서 해결해 나갔다. 한국을 예로 든다면 전국교직원노조가 지역의 학부모들과 교육문제 해결 방향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고, 지자체를 압박하는 사업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자본, 새로운 리더십으로 대응해야”

이병훈 : 레너씨는 민주노총 주최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노동운동 활동가들에게 자신이 매우 낙관적이라고 강조했다. 거대한 자본과 맞서면서 낙관적이 되기란 쉽지 않다.

레너 : 원래 성격이 낙관적이기도 하다. 현실에 대한 분석의 결과이기도 한다. 지금의 시스템, 자본의 지배체제는 매우 취약하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드러났다. 자본의 내부모순이 표출됐고 노동자들은 그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병훈 : 자본주의의 취약성과 위태로움 때문에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레너 :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노동운동 방식으로는 힘들 것이다. 노동운동이 각성해 새로운 리더십으로 뿔뿔이 흩어진 노동자들을 모아야 한다. 비정규직이나 어려운 노동자들의 감정을 움직이면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비전은 분명히 있다.

스나이더만 :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면 낙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통적인 운동방식을 고집하는 이들이 아직은 더 많다. 함께 풀어나가기에는 우려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 대목에서 스나이더만씨는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했다. 부부의 아들 세 명 중 두 명은 부모의 직업을 이어 받아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스나이더만씨는 “아들들이 벌이는 새로운 운동을 보면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노동운동 분열 막으려다 결혼”

이병훈 : 한국에서는 조직대상 노동자들을 놓고 세력 간 갈등이 벌어진다. 내부의 분열과 갈등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두 분도 경험이 있을 텐데.

스나이더만 : 뼈저린 경험이 있다. 우리 부부가 만나게 된 계기는 85년 오하이오주가 공공부문 노동자 4만5천명을 조직화하는 내용의 조례를 통과시킨 것이었다. 온갖 노조 세력이 달려들어 갈등하고 싸웠다. 나는 당시 공무원노조, 남편은 통신노조 소속이었다. 우리도 소속 조직의 입장에 서서 싸웠다. 어느 순간 ‘노동운동이 할 짓이 아니다’는데 동의했다.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고 2년 뒤 결혼까지 했다. 덕분에 주위의 동료들도 연대하고 통합하는 일이 많았다.

레너 : 미국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노동운동의 시각은 좁아지고 편협하게 된다. 솔직히 말해 매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싸우면 누가 이득을 보느냐다.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동운동을 하는 것인데, 우리끼리 헐뜯으면 자본주의 체제는 더욱 공고화된다. 우리의 적은 자본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한다면 풀릴 것이다.

스테판 레너씨와 마릴린 스나이더만씨는 모두 10대 말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한 미국 노동운동의 산증인들이다. 지금 두 사람은 또 다른 꿈을 좆고 있다. 거대 금융자본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고, 유태인 청년들의 사회의식을 깨우는 일을 하고 있다.

레너씨는 현재 조지타운대학 소속 연구기관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자본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금융자본에 대한 저항을 기획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월스트리트의 추한 모습을 목격한 그는 이제 청소노동자 조직의 경험을 살려 금융노동자를 조직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스나이더만씨는 유태인 관련 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유태인 청년들이 사회의식에 눈을 떠 불합리한 세상에 저항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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