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법률원)

노동자 A씨는 업무 외의 부상으로 오른손 약지가 부러졌다. 곧바로 대학병원에 입원해 다음날 전신마취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다. 골절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 석고붕대로 고정했다. 그렇게 4일간 수술·입원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에도 6주 동안 석고붕대를 한 상태에서 수술한 손가락을 안정적으로 보호해야 했다. 수술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되지 않도록 안정가료와 추적관찰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 때문이다.

A씨는 입원한 상태에서 휴가결재권자인 관리자 B씨에게 전화를 걸어 수술 및 입원사실을 알렸고, 개인상병휴가 사용에 대해 상의했다. 관리자 B씨는 사내 인터넷 휴가신청 페이지에 직접 접속해서 노동자 A씨의 개인상병휴가 신청을 대신해 줬다. 개인상병휴가 신청일은 휴가사용 첫날인 17일자로 입력돼 있고, 개인상병휴가 결재는 휴가사용 마지막날인 20일자로 돼 있다.

개인상병휴가 마지막날인 20일, 병원에서 퇴원한 A씨는 오후 2시께 입·퇴원 확인서 등을 챙겨서 회사로 갔다. 관리자 B씨에게 상병상태를 직접 보여 주고 이후 개인상병휴가에 대해 상의했다. A씨는 B씨와 상의한 끝에 원래 연차휴가 사용신청이 돼 있던 24일(휴일 사이에 낀 평일)과 금요일인 21일에 대해서는 연차휴가로 사용하고, 연휴가 끝나는 26일부터 월말인 31일까지 일단 개인상병휴가를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이번에도 A씨는 휴가사용신청을 구두로 했고, B씨가 A씨를 대신해서 휴가신청페이지에 신청내용을 입력했다.

그런데 A씨가 구두로 휴가를 신청하고 관리자 B씨가 대신 휴가신청을 입력한 20일로부터 6일이 지난 26일 저녁, 관리자 B씨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병가 결재를 위해 진단서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왜 이제 와서? 뭔가 불길한 조짐이었다. 일단 A씨는 다음날 병원진료를 받고 나서 진단서를 떼서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다음날인 27일 오후 1시께 B씨는 다시 “병가 승인이 안 난 상황이고 최종 승인을 위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니 진단서를 지참해서 출근하라”는 문자메시지를 A씨에게 보냈다. A씨는 병원에서 뗀 진단서를 사진파일로 관리자 B씨에게 송부하면서 “만약 병가가 불승인됐으면 그 사유를 적시해서 서면으로 보내 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B씨로부터 병가가 불승인됐다는 통보는 없었다. 병가가 불승인된 사유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다만 아직 병가가 승인되지 않았으니 출근 안 하느냐는 문자메시지만 매일 한 번씩 기록되고 있었다.

그리고 병가사용 기간의 마지막날인 31일 아침 10시께 B씨는 병가 불승인을 문자메시지로 통보했고, 회사는 노동자 A씨를 무단결근 처리했다. 사연은 더 복잡하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A씨가 다시 신청한 병가는 계속적으로 병가일이 끝나는 시점에 즈음해서 뒤늦게 불승인됐고, 그때마다 A씨는 무단결근이 쌓여 갔다. 그리고 결국 총 8일간의 무단결근을 사유로 정직 징계처분을 받았다.

관리자 B씨는 노동자 A씨의 근태를 관리하는 결재권자다. 첫 번째 상병휴가도, 두 번째 상병휴가도 구두승인은 사전에 이뤄졌고, B씨가 휴가신청을 직접 입력했다. 여기까지는 똑같다. 그래서 A씨는 당연히 연차휴가와 상병휴가가 모두 승인됐다고 믿었다. 그리고 첫 번째 상병휴가도 형식적 결재(휴가신청 페이지에 결재권자가 승인 여부를 기록하는 것)는 휴가사용기간 마지막날에야 이뤄졌다. 그런데 두 번째 상병휴가에 대해서는 B씨가 본인이 구두로 승인하고 직접 신청내용을 입력한 상병휴가를 휴가사용기간 마지막날에야 사후적으로 불승인했다.

회사는 상병휴가가 최종적으로 승인되지 않는 한 A씨가 당연히 출근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재권자에게 구두승인도 받고 결재권자가 직접 휴가신청을 대신해 줬는데도, A씨는 공식결재가 떨어졌는지 여부를 계속 확인하면서 출근을 했어야 하는 것일까. 만약 열심히 출근하면서 공식결재가 떨어졌는지 여부를 살폈는데 휴가사용기간 마지막날에야 휴가승인으로 결재가 떨어진다면, A씨는 과연 언제부터 언제까지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결국 휴가사용기간 시작 전에 구두승인을 했든, 휴가결재권자가 직접 휴가신청서를 대신 작성했든 다 필요 없다는 것인가. 휴가사용 기간 마지막날 ‘엿장수 맘대로’ 승인 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것일까.

사용자의 휴가불승인, 과연 재량권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노동자 A씨는 법원의 판단을 구하기 위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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