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젊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달 31일 저녁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외근직 수리기사는 “삼성전자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라고 절규하고서 죽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천안분회 조합원은 “전태일님처럼 그렇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라고 소망하면서 자결했다. 최종범은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올해 10월의 마지막 밤에 우리 곁을 떠났다. 힘들었던 삶에 그는 이렇게 죽음으로 대답했다. 31세,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다. 자신의 삶이 그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의 죽음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유서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몇 줄뿐인 유서에서 그가 살아내고자 했던 대한민국 청년노동자의 노동과 삶을 읽어야 한다. 노동자로서 그가 무엇을 짓밟혔고 우리는 무엇을 세워 내야 하는지를 읽어 내야 한다. 진정으로 그를 추모하는 방법이다.

2. 오늘 최종범에 대한 추모는 삼성전자서비스, 나아가 삼성 자본을 비난하는 말이 되고 있다. 금속노조 등으로 구성한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열사대책위원회는 4일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 근무한 최종범 열사는 삼성의 노골적인 노동자 탄압으로 희생됐다”며 “죽음은 삼성의 무노조경영과 악덕 노무관리, 위장도급이 원인”이라고 밝히고, “열사의 뜻에 따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과 노동을 만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해 전국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은수미 등 민주당 의원들도 추모문화제에 참석해서 삼성전자서비스를 비난했고, 진보당·정의당·노동당 등 진보의 당들도 노조활동에 대한 표적감사 등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죽음이라며 삼성전자서비스를 비난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위장도급과 삼성의 무노조경영이라는 극단적인 노조혐오의 노무관리가 부른 죽음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노무관리의 대표적인 유형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는 무노조경영이라는 삼성식 노무관리가, 삼성전자서비스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라는 노조조직이 설립되자 그 조직활동을 저지하기 위한 노조 탄압이 최종범을 괴롭혔다. 그래서 “전태일님처럼 그렇진 못해도 전 선택했다”고, 그는 남은 그의 동지들에게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그는 유서에 썼다. 삼성식 노무관리는 분명히 비난받고 부정돼야 한다. 노동자의 단결권 등을 노동기본권으로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과 그에 따라 노동자의 자주적인 노동조합의 조직과 활동을 규정하고 있는 노조법은 삼성식 노무관리는 대한민국의 법질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명백히 불법이고 범죄다. 그런데도 지금 이 나라에서 삼성식 노무관리가 노무관리의 유형으로 말해지고 있다는 것은 법집행하는 권력이 불법과 범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이렇게 무노조경영 노조탄압의 노무관리에 관해서는 삼성에 대한 비난은 법의 일이고, 삼성에 대한 비난이 계속된다면 그건 법집행하는 권력에 대한 비난이 되고 만다. 이미 노동자의 기본권은 세워져 있다. 최종범을 추모하기 위해서 무엇을 새로이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세워 내야 한다고 주장할 일은 아니다.

3. 그는 힘들었다고 했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일하며 살아 온 그는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위장도급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던 30대 협력업체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로 시작하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최종범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자신의 근로자라고 인정해 온 노동자는 아니었다. 삼성전자서비스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근로자가 근로계약서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마지막 이력이었다. “저 최종범이 그동안 삼성전자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라고 이 청년노동자는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유서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소속이라고 쓰고 있지만 이 세상은 그를 삼성전자서비스 근로자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힘들고 배고팠다고 하는 그를 부려온 삼성전자서비스는 그를 추모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의 근로자로 부르지 않고 있다. 위장도급 논란이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에서 근무해 온 노동자로 그는 죽었다. 자신의 노동을 사용하는 자를 사용자로 부르지 못하고서 삼성전자서비스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로 취급된 채 죽었다. 삼성전자서비스를 위해서 자신의 노동을 바치느라고 “너무 힘들었”는데 그는 근로계약서로 노동의 권리를 빼앗기고서 삼성전자서비스는 자신의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고,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동료의 삶을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어했다. 2013년 대한민국에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은 이렇게 힘든 것이었다. 노동자의 노동을 실질적으로 사용해서 사업하는 자가 도급계약으로 그 책임에서 사라져 버리고 마는 세상의 질서가 노동자로서 보장받아야 했던 최소한의 권리를 짓밟고 그의 삶을 짓밟았다. 그의 힘들었던 삶, 또 다른 청년노동자가 힘들어 하는 삶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

4. 현대자동차에서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가 자신의 사용자라고 주장할 수 있는 법이 파견법이다. 이 파견법을 자신의 권리로 삼성전자서비스센터라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걸 아직 법원은 인정해 주고 있지 않다. 파견법은 최종범을 힘든 삶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가 없었다. 위장도급·불법파견이라는 비난은 아직 그의 동료들을 힘든 삶에서 벗어나게 해 줄 법적 비난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지난해 국회에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다. 이 사내하도급법안은 사내하도급계약으로 파견법을 위반해서 파견근로를 사용하고 있는 걸 합법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민주노총 등에서 반대해 온 법안이다. 파견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이 법안이 제정되면 그나마도 불법파견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업장조차 사용자들은 합법적인 사내하도급계약으로 전환해서 사내하도급업체 노동자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법안은 아직 그 운명을 모른다. 제조업 생산공정에 파견근로를 허용하지 않고 일정한 경우 사용사업주에게 고용의무 등으로 원청 근로자가 될 수 있도록 한 파견법의 규제방식과는 달리 이 법안은 사내하도급업체 근로자에 대한 임금 등의 차별금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사내하도급법이 국회를 통과해서 제정·시행된다면 삼성전자서비스 센터라는 협력업체 소속이었던 어느 청년노동자의 소망, 자신의 동료 노동자들이 너무 힘든 노동자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 수 있을까. 사내하도급법은 원청회사 내에 사업장이 있는 하도급업체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사내하도급업체 노동자가 원청회사 노동자와의 사이에 임금 등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유감스럽게도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가 무슨 센터라고 해서 삼성전자서비스 밖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경우라면 사내하도급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현재의 파견법도, 혹시 올지 모를 내일의 사내하도급법도 어느 청년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추모가 되지 못할 수 있다. 이 나라에서 법, 노동자권리로 말한다면 아직 최종범을 진정으로 추모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5. 날마다 노동자권리 타령으로 살고 있는 나는 머리가 아프다. 어느 청년노동자는 죽는 순간까지도 삼성전자서비스 소속이라고, 자신의 유서에서 너무 힘들었다고 배고팠다고 하는데 그의 노동을 사용해 온 삼성전자서비스는 그를 자신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한다. 사용자의 이런 짓거리를 당연하다고 그것이 법이고 권리라고 떠드는 세상이 골치가 아프다. 오늘도 뉴스에서 우리나라는 파견법이 파견근로를 허용하지 않으니 기업은 하도급계약으로 위장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어느 노동법 교수의 말이 떠돈다. 교수의 이런 말이 노동법이라면 빌어먹을 법이다. 계약으로 기술을 부려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도록 용인하는 것은 분명히 노동자를 위한 법이라고 선언해 온 노동법의 자살이다. 그리고 그건 노동자권리를 사용자를 위해서 외면하고 왜곡한 자들에 의한 타살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이 세상에서는 공공연하게 노동자권리를 짓밟고서 노동법을 죽이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니 뭐니 교수니 뭐니 그들의 말이 그들이 노동자를 죽이고 있다. 명백히 말해야 한다. 43년 전 어느 청년노동자의 죽음처럼 오늘 그의 죽음도 우리의 세상이 법이 법집행이 노동의 권리를 짓밟고 빼앗는 사용자의 짓을 계약을 분명히 비난하고 부정하지 못해서 초래했다. 단순히 삼성전자서비스를 비난하는 것으로는 어느 청년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추모가 되지 못한다. 힘들었던 노동자로서의 삶에서 사용자에게 빼앗긴 것들을 찾아내서 더 이상 짓밟히지 않도록 노동의 권리로 세워내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적어도 그 방법으로 말하기까지는 우리의 추모사는 진정으로 그를 추모하지 못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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