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축소로 촉발된 박근혜 정부의 공약후퇴 또는 공약파기 논란이 뜨겁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모든 어르신에게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공약했다. 이 공약은 박 대통령이 60세 이상 연령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막상 집권 뒤 말이 바뀌었다. 기초연금 2배 인상 공약은 어디로 가고 국민연금과 연계해 하위소득 70%에게만 차등지급을 하겠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대통령 후보 3자 토론 당시 상대 후보의 끈질긴 확인 속에서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을 약속했지만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철도 민영화, 장애인 공약, 반값등록금,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 해소, 무상보육, 경제민주화 등 공약 후퇴가 이어지고 있다. 공무원노조·전교조와 관련한 입장도 박근혜 정부 내각 구성 당시보다 후퇴하는 등 모든 분야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공약파기 중단을 촉구하며 지난 7일부터 서울광장에서 시국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 같은 논란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기초연금 공약, 축소가 아니라 처음부터 기획된 사기

오건호
내가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은 애초부터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소득별로 차등지급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재정이 부족해 기초연금 공약을 축소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기획된 '대국민 공약 사기'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집을 보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운영'을 명시하고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기초연금 공약 축소 비판이 일자 "공약이 무조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드린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며 이런 사실을 재확인했다.

공약 재정소요 자료에도 잘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임기 첫해에 기초연금법을 제정하고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모두 25조원이 필요한데 재정소요 자료에는 60% 수준인 14조7천억만 기초연금에 할당하고 있다. 이러한 재정소요액을 보더라도 애초부터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지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대선 기간 새누리당은 거리 현수막을 통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드린다고 홍보했고, 박근혜 대통령 후보도 TV토론회에서 그렇게 말했다. 언론도 그렇게 보도했다. 대선이 끝난 이후에서야 공약의 실체가 정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애초에 이해한 대로 보편적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맞다. 재정이 부족하다면 부자들에게 더 걷어야 한다. 상위 20%가 더 내면 충분히 가능하다.

4대 중증질환 공약파기는 국민행복시대 역행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62% 수준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9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누구든 아프면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필수과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4대 중증질환(암·심장질환·뇌혈관질환·희귀난치성질환) 100% 국가책임’ 공약은 그래서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4대 중증질환 보장 강화계획’에는 병원비 부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 해결책이 쏙 빠져 있다. 4대 중증질환 본인 부담금을 100%가 아니라 고작 20%만 책임지겠다는 것인데 이는 명백한 공약파기이자 국민우롱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진주의료원 폐업은 수수방관하면서, 원격의료 허용법안 입법예고와 의료관광 활성화 등 의료영리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자신이 내세운 ‘국민행복시대’에 역행하지 말고, 공약 100% 이행과 함께 저보장-저부담-저수가 체계를 개선해 건강보험 하나만으로도 4대 중증질환만이 아니라 모든 병원비 부담을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철도 민영화 입장 밝히고 사회적 합의 통해 결정해야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철도 민영화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당시 새누리당이 노조에 보낸 정책회신 공문에는 "박근혜 후보는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를 절대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 기간망인 철도는 가스·공항·항만 등과 함께 민영화 추진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뿐인가. 대선 막바지에는 새누리당은 SNS를 통해 "박근혜 후보가 집권하면 가스·전기·철도 등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흑색비방이 난무하고 있다"며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발끈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권한 다음 상황은 어떤가.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반대가 컸던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사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계속 추진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는 '철도 민영화'를 '철도 경쟁체제'로 이름만 바꾸고 민영화를 추진을 하고 있다.

대선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당선 됐다고 공약을 져버린다면 국민이 무엇을 믿고 정책을 판단하고 선택을 할 수 있겠나. 박근혜 정부는 지금이라도 철도 민영화에 대한 입장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지금처럼 국토교통부를 앞세운 채 뒤에서 입을 꾹 다물고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든가 '국민이 몰라서 그렇지 민영화하면 좋은 거다'라는 식의 태도는 사회적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정말 철도산업의 발전을 위한다면 사회적 합의절차를 거치길 바란다.

장애인 공약, 한 번 뒤집더니 또 바꾸려 해

남병준
전국장애인차별
철폐연대 정책실장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장애등급제 폐지와 모든 장애인에 대한 20만원 연금지급을 약속했다. 장애 정도에 따라 1~6급으로 나누는 장애등급제는 부양의무제와 함께 장애인을 가난하게 만드는 나쁜 제도다. 장애등급이나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복지와 서비스를 차별하기 때문에 다 같은 장애인이라 몸이 불편한데도 등급이 떨어지면 혜택을 못 받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제도는 지하철이나 버스요금 할인 등 감면·할인제도가 중심이다. 직접적인 복지혜택 없이 간접적인 혜택 위주다. 그래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모든 장애인에게 연금을 주겠다는 공약은 의미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정부는 기존 1~3급을 중증으로, 4~6급을 경증으로 단순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름만 바꾸고 기존 제도를 그대로 두겠다는 의도다. 더구나 모든 장애인에게 연금을 주겠다는 공약은 1~3급 장애인 중 하위 소득 70% 이하에게만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기존에 1~2급에게만 지급했던 연금을 3급까지 확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다시 계획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한 번 말을 바꿨다가 다시 그 계획마저 바꾸려 하는 것이다.

반값등록금은커녕 국가장학금 예산마저 줄여

 박가혜
21세기 한국대학생
연합 집행위원장

최근 부산의 한 대학생이 과외와 아르바이트로 힘들게 등록금을 충당하다 지하철에 투신자살한 사고가 있었다. 반값등록금에 대한 대학생들의 절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 외에도 요즘 대학 총학생회 선거철이라 후보들이 공약 조사를 하면 대학생들이 원하는 공약 1위는 다 등록금 문제 해결이다.

박근혜 정부는 내년까지 국가장학금을 통해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년도 장학금 예산 증액분은 애초 교육부가 요구한 1조6천억원에서 4천억원으로 삭감됐다. 사실 국가장학금으로 반값등록금을 대신한다는 것도 '꼼수'였는데 이제 와서 예산마저 삭감했으니 공약을 파기한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국가장학금 자체도 여전히 문제점이 많다. 액수 자체도 적고, 성적이 아닌 빚이나 소득을 반영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도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정부는 등록금을 인하한 대학들에 대한 인센티브제도를 전년보다 축소했다. 이런 점을 보면 박 대통령이 등록금이나 교육문제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공약을 이행할 생각은 있는지 의문을 넘어 부정적인 생각마저 든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확히 장학금이 아닌 등록금 자체를 반값으로 해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 등록금을 비롯한 많은 대선공약들이 대학생과 그 부모의 삶과 연결돼 있다. 박 대통령이 그 공약들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서민의 삶을 파괴하는 식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거 같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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