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최근 295개 공공기관에 각종 공공기관 지침과 다른 단체협약 조항 현황을 조사·작성해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기재부는 공문에서 '불합리한 단체협약 조항 주요 사례'를 나열하는 등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정부가 개별 공공기관의 단협을 통제하기 위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기재부, 지침과 다른 공공기관 단협 현황 조사=28일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금융노조·공공노련·공공연맹·공공운수노조연맹·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 18일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의 적용을 받는 295개 공공기관에 "기관의 단체협약 내용 중 공공기관 지침과 상이한 내용과 불합리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단체협약 조항 현황을 작성해 10월22일까지 회신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냈다.

기재부는 공문에서 인사·예산(임금)·복지후생·경영사항 등 항목별로 나눠 공공기관 지침과 다른 단협내용을 비교·보고하도록 했다. 단협상 불합리하다고 보는 규정에 대해서는 협약내용과 (불합리한) 이유를 함께 보고하도록 했다.

'불합리한 단체협약 조항 주요 사례'를 항목별로 적시해 놓기도 했다. 사례에 따르면 기재부는 △간부회의 등에 조합대표 참여, 투자심의 위원회 등에 참석 △조직개편·정원 조정시 사전 협의 △노사 동수의 인사·경영·노사 등의 위원회를 구성해 사전 합의 △경영상 이유로 인한 구조조정·해고시 시행 여부·기준·대상 등에 대한 사전협의하는 것 등을 노조의 인사·경영권 간섭으로 봤다.

이어 △시중금리보다 낮은 주택자금 대출 이자 △대학 등록금 무상지원 △건강검진 대상 과다 △불합리한 특별 수당 △직원 가족이 암·백혈병 등 투병시 의료비 지원도 불합리한 복리후생 조항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해고 효력을 다투는 자를 대법원 확정 판결시 조합원으로 간주하거나 적법한 쟁의행위시 조합·조합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부과를 금지하도록 한 단협 내용도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공공기관 단협 개악 유도 압력" 반발=기재부는 이번 조사를 시행하는 이유로 '국정감사 지적사항에 대한 현황 파악'을 들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날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재부 국정감사나 언론을 통해 공공기관 단협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며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실태파악 차원에서 하는 조사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여당이 국정감사를 빌미로 공공기관의 단협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개입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이 공공기관 부채 누적원인을 "방만한 단협 때문"이라고 화살을 돌렸고, 기재부가 "시정하겠다"고 답변한 뒤 조사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6일 기재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공기업 부채도 심각한 상황에서 불합리한 단체협약이 공공기관 방만경영의 원인"이라고 주장했고, 같은 당 김상민(환경노동위)·이노근(국토교통위) 의원도 각각 노동부·국토부 국감에서 공공기관 단협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연맹 공공기관사업팀장은 "국회가 바람을 잡고, 기재부가 행동하는 수순으로 공공기관 단협을 통제하려는 것 같다"며 "기재부가 언급한 '불합리한 사례' 부분이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 확대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정부 때는 인사경영권에 대해서만 문제 삼더니 이제는 복지후생부터 노사관계 문제까지 전방위적으로 개입하려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하상진 공공연맹 정책실장은 "정부가 단협 자체를 통제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 3권을 훼손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한편 공대위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공공연맹에서 대표자회의를 열고 기재부 조사에 대한 대응계획을 논의했다. 공대위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에 노사관계 부당개입과 노동 3권 부정에 대해 항의하고, 공개토론회 등 정책·여론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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