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길 역사연구가

고대 로마시대의 이야기다. 경쟁국인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이탈리아 반도로 진격해 연승을 거두며 로마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기원전 216년 8월2일 치러진 칸나에전투에서는 5만명 가까운 로마군이 몰살당하기도 했다. 로마가 운명의 기로에 서 있던 바로 그 순간 젊은 장군 스키피오는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에 머물고 있는 틈을 이용해 적 근거지인 카르타고로 쳐들어갔다. 결국 한니발은 단 한 번도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데도 패장의 신세가 돼 되돌아가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때의 이야기다. 독일의 히틀러는 코카서스 유전지대 확보를 목적으로 볼가강 하구의 스탈린그라드를 향해 총공격을 가했다. 인간의 상상을 불허하는 참혹한 시가전 끝에 독일군이 소련군을 제압하면서 시가지의 90%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독일군이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바로 그 순간 시 외곽으로 밀린 소련군은 발상을 바꿔 시내로 진주한 독일군을 포위한 뒤 보급로를 차단했다. 독일군은 결사적으로 저항했으나 보급이 끊긴 상태에서 혹한의 겨울이 닥치자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죽을 고생해서 점령한 지역이 죽음의 함정으로 돌변한 것이다.

두 개의 사례가 던지는 교훈은 매우 명확하다. 궁지에서 탈출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역발상의 지혜를 바탕으로 전선을 획기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좌우 구도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던 진보진영에게 절실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지혜였다. 다행히 좌우 구도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그에 필요한 환경변화가 일어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2008년 이전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절대적 힘을 발휘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사실 신자유주의란 표현은 비판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정작 당사자들이 사용한 용어는 ‘글로벌 스탠더드’였다. 이 말은 무서운 괴력을 발휘했다. 한국과 같은 변경 국가의 지식인들은 신자유주의의 원칙을 글로벌 스탠더드인 만큼 무조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으로 믿었으니 말이다.

반대편에 있던 진보적 지식인들은 또 다른 역편향을 보였다. 신자유주의를 절대시하면서 신비화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별도의 기회에 상술하겠지만 교묘히 포장된 대규모 금융 사기극에 불과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이 기업의 생산기반을 붕괴시키면서 형성시킨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서의 인위적 거품에 의존했던 지극히 지속가능성이 없는 시스템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그러한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던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이전 시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에 가위눌려 살아야 했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음에도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감히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을 지배한 것은 오직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강박관념뿐이었다. 그러다 20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신자유주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바뀐 것이다.

갑에 짓눌려 살던 을들이 대담하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동반성장·경제민주화·복지국가 건설 담론 등이 빠르게 일반화돼 갔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집중적 타격을 받았던 20~30대 젊은 세대는 비록 정서적 수준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급진성을 띠기 시작했다.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사법부는 고이고이 풀어 주기만 했던 재벌 총수들을 향해 실형을 세게(?) 선고하기 시작했다.

모로 보나 진보진영이 자신을 옥죄었던 좌우 대결 구도를 벗어던지고 신자유주의 세력을 향해 파상공세를 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전선을 획기적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그런데 2008년을 거치면서 진보운동은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그 상황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2008년 이전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은 복지국가 건설을 제기하면서 꾸준히 지지율을 상승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때 당 지지율이 20%에 육박하기까지 했다. 신자유주의가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조건에서 먹혀들 수 있는 특정 의제에 집중하는 ‘의제 전략’이 나름대로 효과를 본 것이다.

그런데 2008년을 거치며 잠재해 있던 분열이 가시화되면서 진보정당은 상승 국면을 이어 갈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더불어 복지국가 담론 등이 일반화되면서 의제 전략이 더 이상 효과를 볼 수 없었다. 흔히 하는 말로 의제에서의 ‘오너십’을 발휘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변화된 지형에 맞도록 전략을 재정립하는 것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지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조차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단적으로 2008년 이전과 이후 진보진영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략 재정립은 기대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진보진영의 경쟁력은 변화에 대한 감수성에서 나온다. 문제는 바로 그 감수성이 죽어 있었다는 데 있었다. 그로부터 수많은 문제들이 파생하기 시작했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