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전교조가 합법적인 교육전문노조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아 가슴이 벅차고 한편으론 어깨가 무겁다.”

이수호(64·사진) 전국교직원노조 9대 위원장이 2000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당선소감이다. 그 후 정권이 3번 바뀌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출범 8개월 만에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될 위기에 처했다. 23일까지 해직자를 규약상 조합원 가입대상에서 배제하라는 규약을 개정하지 않으면 전교조는 합법노조 14년 만에 ‘노조 아님’을 통보받는다.

이 전 위원장은 전교조가 합법적인 교원노조로 자리를 잡던 시기와 민주노총이 어려었던 시기에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패한 후 칩거에 가까울 정도로 외부접촉을 자제하며 말을 아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찻집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브레이크를 밟아 줄 때"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계가) 위기인 만큼 더 크고 넓게 단결한다면 기회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지난해 대선 이후 많은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지냈나.

“가슴앓이를 많이 했다. 이명박 정부 때 노동계가 힘들었는데, 박근혜 정부 5년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아직 말을 많이 하는 게 조심스럽다.”

- 전교조는 23일까지 해직자를 조합원 대상에서 배제하라는 고용노동부의 요구에 답해야 한다. 현 지도부는 잘 대응하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 노동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총력투쟁을 선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지도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총투표를 통해 조합원의 의견을 묻는 방식도 동의한다.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거나 선동해서 될 일이 아니다.”

- 노동부의 요구는 수용해야 하나, 거부해야 하나.

"1989년 1천700여명의 전교조 조합원들이 해직됐을 때와 지금은 다르다. 그 당시 정부와 지금의 정부를 볼 필요가 있고, 국민이 지금 전교조를 어떻게 보는지도 봐야 한다.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노동부의 요구를 받아들여도 안 받아들여도 전교조는 지금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전교조의 조직력을 복원하고, 앞으로 어떻게 전교조를 끌고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참교육이 무엇인지, 전교조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줘야 한다."

- 합법노조로서 전교조의 14년을 평가해 달라.

“학교는 교장 1인 체제였고, 관료적으로 움직이던 비민주적인 곳이었다. 교장 1인 체제의 학교를 민주적으로 바꾸는 데 전교조가 기여했다. 이를 국민은 사회적인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교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 전교조가 못한 점은 무엇인가.

“학교 정상화 이후 전교조는 새로운 목표와 비전, 공교육 발전을 위해 싸워야 했다. 보수진영에 발목을 잡히기도 했지만, 내부적인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한 점도 있다. 사교육과 입시제도에 전교조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교육현장에서 신자유주의적인 변화가 너무 빨랐다.”

-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노동운동의 핵심은 크게 단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교조는 비정규 교사와 학교에서 일하는 다른 업종의 노동자까지 끌어안지 못했다. 학교에 비정규직이 많이 생겼는데도 전교조가 교사 중심의 교원노조로 갔던 것이 전교조 발전을 저해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본다. 교원노조에서 교직원노조로 나아가야 한다.”

- 해직자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노동운동은 해고를 두려워하면 할 수가 없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는 (이해관계가 달라) 적대관계일 수밖에 없다. 해고를 감수해야 당당하게 싸울 수 있다. 해직자를 노조에서 책임지지 않았다면, 조합원들은 노조활동을 하지 않고 학원으로 가거나 유학을 떠났을 것이다.”

- 규약을 개정하되, 해고자를 노조에서 책임지자는 얘기인가.

“노동부의 요구는 악법을 강요하는 것이다. 수용하든 거부하든 해고자를 조합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법은 고쳐야 한다. 수용·거부 또한 전술로 바라봐야 한다. 규약에 매몰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93년에 해직교사들 500여명의 1차 복직을 검토했다. 당시 정부는 전교조가 해직자를 받아들이면 복직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현직교사가 되려면 노조를 탈퇴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결국 노조에서 정부의 요구를 전술로 바라보고 해직자들이 탈퇴했다. 그래서 복직할 수 있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작전상 후퇴였고, 조합원들이 이를 수용했다.”

-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체제로 바뀐 이후 학교현장에서 인권조례가 잘 안 지켜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면 영향이 있지 않겠나.

"당장 학생인권조례와 혁신학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학교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전교조 교사들의 역할이 크다. 하지만 참교육은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고 바꿀 것인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법내노조·법외노조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 선배 위원장으로서 전교조에 격려의 한마디를 한다면.

“기죽지 말고 처음 마음으로 대차게 싸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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