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단적으로 말해 현재의 금속노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조합원 고령화와 현대자동차그룹 성장으로 인한 산업구조 변화가 금속노조의 기반을 심각하게 침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행부가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투쟁을 하느냐 문제가 아니다. 지금 금속노조가 당면한 문제는 조건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적인 것들이다.

노동시장 고령화에 대해서는 이미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논의될 정도로 여러 이야기가 있어 왔다. 그런데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들과 같이 강한 단체협약을 통해 고용안정을 이뤄 온 사업장들의 고령화는 노동시장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정년퇴직 행렬도 더 넓고 길다. 금속노조 조합원의 20% 이상이 10년 내 정년이고, 30% 가까이가 15년 내 정년이다. 전체 조합원 중 40% 가까이는 향후 10년 동안 노조 정책 결정에서 정년을 핵심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연령대에 있다. 금속노조가 일찍이 경험해 본 적 없는 그야말로 ‘정년퇴직’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노동운동에서 베이비붐세대의 퇴직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세대의 퇴직이기도 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어떤 학자들은 한국 노동운동이 87년 대투쟁의 자산을 갉아먹으며 지금까지 버틴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하기도 한다. 과장되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금속노조의 역사 역시 그러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민주노조 운동이 대중화한 이후 노동자 대투쟁을 잇는 다음 순환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87년 대투쟁 세대의 퇴직은 이런 점에서 역사적 단절에 가깝다. 최근 금속노조의 각 단위 임원선거에서 다시 80년대 사번 활동가들이 핵심 역할을 맡는 것은 새로운 세대적 리더십이 나오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대규모 정년퇴직의 시대, 초기업노조의 경험과 승리로 만들어질 새 세대 리더십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제도가 아니라 정신으로 유지되는 산별노조는 크게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산별노조 정신의 뿌리는 노동자 대투쟁과 그에 뒤이은 전노협이다. 지금까지 금속노조는 제도적 뒷받침 없이 오로지 산별노조의 대의로 조직을 유지해 오고 있다. 초기업노조·산별노조의 승리를 근간으로 한 새 세대 리더십이 조직유지에 필수적인 이유다.

이런 주체 상황에서 산업적으로는 국민경제와 분리된 채로 현대차그룹의 성장이 계속되고 있어 금속노조가 계급적으로 확장해 나가기가 더욱 불리해지고 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국민경제성장률이 연평균 2~3%에 불과했음에도 현대차그룹의 성장률은 연평균 15%에 달했다.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을 제외할 경우 한국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두 그룹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또 두 그룹 소속의 노동자와 다른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경제 상황이 다르다. 현재 금속노조 조합원의 3분의 2는 현대차그룹 소속이다. 현대차그룹의 성장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1차 벤더까지 합할 경우 4분의 3에 달한다. 금속노조는 한국 국민경제가 아니라 현대차경제에 속해 있다고 해도 그렇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현대차그룹에 대한 종속성이 커질수록 금속노조가 산별노조를 유지할 이유가 줄어들게 된다. 현대차그룹이 보장하는 경제적 이득이 크고, 한국경제가 재벌에 종속적이 될수록 재벌 밖의 노동시장은 참혹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속 산별노조의 핵심은 금속산업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임금과 노동조건의 표준을 만드는 것인데, 현대차그룹 종속성이 커질수록 산별노조로서 역할을 할 이유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조합원 고령화로 아무래도 활동력은 떨어지고 보수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주체 조건까지 감안하면, 더욱더 산별노조를 유지할 동인이 줄어든다.

이달부터 임기를 시작한 금속노조 8기 집행부는 이러한 두 조건이 본격적으로 현실화하는 시점에 서 있다. 조합원 고령화와 현대차그룹 종속성 심화에 대한 해결책은 구조조정 저지, 노조탄압 분쇄, 주간연속 2교대제 쟁취, 비정규직 철폐 등과 같은 이전 정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현대차그룹 밖에 있는 노동자, 산업단지 중소사업장의 수백만 노동자들, 노조의 ‘노’자도 구경해 보지 못했지만 한국 제조업의 핵심 축인 전자산업 노동자들을 새롭게 조직하는 것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현재 15만 금속노동자가 다른 15만을 조직해 금속노조의 조건 자체를 바꾸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것이다.

금속노조에게 조직화 사업은 조직의 10년 전망을 내건 사업이어야만 한다. 형식적이고, 미조직·비정규직 담당자만의 사업이어서는 안 된다. 8기 집행부는 교섭과 조직편제를 중심에 두고 진행된 기존의 조직전망 논의를 ‘또 다른 15만’을 중심에 두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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