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말할 자유에 관해서 자문요청을 받았다. 선전홍보규칙안에 관한 법적 검토였다. 노동조합이 선전홍보에 관한 규칙을 제정해서 시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규칙안을 제1조부터 읽어 보았다. 규칙위반시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징계까지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선전홍보활동 보장을 위한 것이라면 마땅히 제정해서 운영해야 하는 규칙이다. 그런데 이런 규칙이 아니었다. 조합원이 노동조합 명의로 선전홍보물을 게시하고 배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선전홍보의 규칙이 아니었다. 흔히 단체협약에는 노동조합이 선전홍보물을 사업장 게시판 등에 게시하고 사업장 내에서 조합원 등에게 배포할 수 있도록 정한 규정이 있다. 노동조합의 사업장 내 선전홍보활동을 보장하는 규정이다. 우리의 경우 노동조합의 조직활동은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산별노조 등 초기업단위노조라도 그렇다. 이처럼 노동조합의 조직활동이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에는 사업장 내에서 조합활동에 관해서 단체협약 등으로 사용자로부터 보장받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규칙안이 그런 규칙인줄 알았다. 사용자로부터 보장받은 노동조합의 사업장 내 선전홍보활동에 관해 조합원이 노동조합 명의로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선전홍보규칙을 제정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규칙안을 읽어서야 알 수 있었다. 규칙안은 사업장에서 조합원이 자신의 명의로 선전홍보물을 게시하고 배포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을 사전에 노동조합에 접수해서 확인받아서 사업장에 게시, 배포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즉 사업장 내 조합원의 선전홍보물을 노동조합이 관리하겠다는 규칙이었다. 나는 더 이상 자세히 검토하지 않았다. 어쩌다 이런 규칙을 제정해서 조합원의 선전홍보활동을 관리하려고 하는 것일까. 특별한 고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동안 선전홍보물로 인해서 노동조합 내에서 크게 시끄럽게 문제돼 왔으니 이런 규칙을 만들어서라도 관리하고자 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그저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임의로 게시·배포하는 선전홍보물을 파악하고, 단체협약에서도 사업장 내 게시 등을 제한하고 있으니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내에서도 조합원의 선전홍보물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취지로 규칙을 제정하려고 했을 것일 것이다. 특별히 조합원의 노동조합 조직활동을 제한하려는 취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규칙안에서는 선전홍보물의 내용까지는 심사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이 무엇이 문제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필요하고 별 문제 없는 것이니 규칙 제정권한 있는 노동조합의 회의체에서 제정하고자 했을 것이다. 어디 이 노동조합뿐이겠는가. 다른 노동조합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취지의 규칙을 제정하고자 할 수 있겠다. 선거 등 노조권력을 둘러싼 대립이 조합원들 사이에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우리의 노동조합은 지금 조합원의 말할 자유를 문제 삼고 있다.

2. 그러나 안 된다. 노동조합 명의로 조합원이 선전홍보물을 게시·배포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단지 조합원이 사업장에서 선전홍보물을 게시·배포하는 걸 노동조합이 관리하겠다면 안 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스스로 조합원이 돼서 회원으로 조직, 활동하는 노동자의 단체다. 사업장 내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노조 활동에 관한 의사가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관리하려는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 조합원의 의사다. 어떻게 구성원의 의사를 조직의 의사로 해서 활동할 수 있느냐가 어떤 조직이라도 그 조직의 운명을 결정한다. 구성원의 의사와 단절돼서 조직이 운영된다면 그 조직은 조직의 운영을 좌우하는 권력자의 것이다. 더 이상 구성원의 것이 아니다. 기껏해야 구성원을 위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 뿐, 구성원 자신의 조직은 아니다. 노동자가 스스로 조합원으로 가입, 조직해서 활동하는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이 주인이 돼야 한다. 그것은 선거로 선출된 대표의 행위에서조차도 노동조합은 일상적으로 조합원의 의사가 노조의 의사가 되도록 해서 조직활동이 전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의 의사는 다양한 선전홍보활동을 통해서 일상적으로 표현된다. 노동조합이 그걸 관리하면 조합원의 자유로운 표현은 제한이 되고 만다. 민주노조라면 그걸 관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합원의 당연한 권리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그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관리해야 한다. 말할 자유, 조합활동에 관해서 목소리가 작은 조합원의 사소한 말이라도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3. 사업장에서 조합원의 선전홍보 활동은 사용자에 의해 일반적으로 제한·금지되고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해석하는 법원의 판례가 그렇다. 단체협약·취업규칙·관행·사용자의 승낙이 있어야만, 한마디로 사용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허용해 주지 않으면 사업장에서 근로시간 내에서는 할 수가 없고, 사업장 내 게시도 사용자의 시설관리권에 의한 합리적인 통제 범위 안에서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 판례 법리다.(대법원 1990.05.15 90도357 판결 등) 이것이 우리의 노동조합의 주된 조직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곳, 사업장에서 보장되고 있다는 노동조합활동의 권리다. 이렇게 우리의 사업장에서 조합활동은 원칙적으로 제한·금지다. 오직 사용자가 허용해 줘야 보장받는다. 그곳에서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과 조합원의 조합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노동조합활동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사용자의 통제범위 아래서 행해지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수십 년을 민주노조를 외쳐 왔다 해도 그렇다.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조직활동을 하고 있다. 사업장에서 노사협의회와 다름없이 노동조합이 원만한 노사협력으로 활동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거기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노사협의회에 관한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과 다르게 정한 대로 사용자에 맞서 대립하면서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교섭·쟁의 등 활동을 노동조합이 한다면 다르다. 그때는 조직활동에서 심각한 위기가 올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이다. 바로 거기에 조합원의 의사표현의 자유, 선전홍보활동이 있다. 그렇다면 노조는 사업장 내에서 이렇게 제한·금지되고 있는 조합원의 의사 표현을 권리로 쟁취하기 위해 요구안을 만들어서 조합원이 아닌 사용자에 맞서 싸워 나가야 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말할 자유를 관리할 것이 아니라 사업장에서 조합원의 말할 권리에 관심을 둬야 한다.

4. 노동자가 조합원으로 조직해서 활동해 나가는 노동자단결체인 노동조합에서 가장 치명적인 위험은 조합원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조합원의 의사 표현을 노동조합이 관리하는 것이다. 노조간부가 아니라서 노동조합의 행위를 자신의 행위로 직접 할 수가 없는 현재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원리에서는 의사 표현의 자유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조합원의 중요한 권리이고, 그것이 제한받으면 노조가 무너질 수 있는 치명적인 권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사소한 제한으로도 사라져 버리고 마는 자유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인민의 의사 표현의 자유도 그렇다. 권력의 사소한 제한, 관리로도 치명적일 수 있는 기본권이다. 말할 자유는 사소한 제한으로도 입을 닫고 마는 자유이다. 어찌 보면 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이고 그 전제가 되는 자유이지만 이렇게 가장 나약한 자유다. 어쩌면 그래서 오늘도 권력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저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받을 것 같으면, 괜히 찍힐 것 같으면, 그도 아니면 친한 사람들과 멀어질 것 같으면 입을 닫고 마는 인민의 자유이고 기본권이어서 그런지 모른다. 이런 걸 두고서 아무리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자유이고 기본권이라고 떠들어대도 소용이 없다. 사소한 제한, 관리라도 있으면, 권력이 주시하고 있다거나 하다못해 권력이 나중에라도 뭐라 했는지 들여다볼 여지라도 있으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허위사실이니, 명예훼손 내지 모욕의 말이니 미리 그걸 우려해서 노동조합이 말할 자유를 관리하면 안 된다. 말할 자유는 관리하면 그걸 무릅쓸 수 있는 힘센 자들만의 자유로 전락한다. 노동조합 내에서 조합원의 말할 자유를 관리할 때가 아니다.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조합원, 나아가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사용자로부터 말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말할 때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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