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해 9월부터 통합논의를 진행해 오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두 노조가 최근 통합안에 대한 조합원 총투표를 가결하면서 9부 능선을 넘었다.

한 지붕 두 가족이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사회보험지부(지부장 황병래)와 한국노총 공공연맹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조(위원장 성광)가 갈등의 세월을 접고 내년 10월께 조합원 1만여명의 거대 단일노조로 재탄생한다. 올해 7월 기준으로 사회보험지부 조합원은 6천411명, 직장노조 조합원은 3천392명이다.

공단은 2000년 출범 이후 노사 간, 노노 간 갈등으로 바람 잘 날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98년 10월 '의료보험체계의 효율적 관리'를 내걸고 공교(공무원·교직원)의료보험관리공단과 지역의료보험조합을 통합(1차)해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을 설립했다. 2년 뒤인 2000년 7월에는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직장의료보험조합을 합쳐(2차)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출범시켰다.

1·2차 통합 과정에서 조직갈등이 심각했다.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저해를 이유로 통합하지 말고 이대로 유지하자는 '조합파'와 관리·운영과 재정을 하나로 통합해야만 소득재분배를 달성하고 보장성을 높일 수 있다는 '통합파'로 나뉘었다. 직장노조가 조합파였다면, 사회보험지부는 통합파였다. 황병래 지부장과 성광 위원장 모두 "지긋지긋하게 싸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갈등의 전사(前使) 탓에 조합원 총투표를 진행하면서도 투표함 뚜껑을 열기 전까지 일말의 불안감이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한 지붕 두 가족으로 갈라져 있던 13년 세월의 간극을 메우기에는 통합을 추진한 지난 1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실제 청와대나 국가정보원·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심지어 공단까지 '설마 되겠냐'는 전망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개표 결과 사회보험지부는 72.8%, 직장노조는 68.3%의 찬성률로 통합을 결의했다. 통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열망이 우려보다 강했던 셈이다. 물론 통합노조의 상급단체를 결정하는 문제 등 갈등의 소지는 남아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염리동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성광(53) 위원장과 황병래(46) 지부장을 만났다.

"조직 편 가르기는 고통, 통합으로 가야"

- 주변에서 조직 간 통합이 어렵겠다는 얘기가 많았다. 될 줄 알았나.

성광·황병래 : (한목소리로) 될 줄 알았다.(웃음)

- 조합원들이나 주변의 분위기는 어떤가.

황병래 : 그동안 통합을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했던 걸 성사시킨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상당히 자축하는 분위기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성광 : 조합원들은 다들 좋아한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직장노조 규모가 사회보험지부보다 적다 보니 '흡수되는 거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노총 소속) 다른 노조위원장들이 축하인사를 하면서도 '저 양반 바보 아니냐'고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물론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웃음)

- 사회보험지부에서도 반대가 만만치 않았는데.

황병래 : 솔직히 3대가 먹을 욕은 다 먹은 것 같다.(웃음) 상급단체 문제가 있다 보니 더 그랬다. 공단은 전국네트워크 사업장이다. 그동안 지역의 노동운동을 이끌다시피 했다. 사회보험지부가 곧 민주노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시 민주노총으로 갈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통합에 반대한 분들의 마음까지 다 안고 가는 게 집행부의 책무다.

성광 : 우리도 큰 가닥에서는 비슷하다. 앞서 말했지만 조직이 상대적으로 작다. 당연히 우려하는 활동가들이 있지 않았겠나. 하지만 드러내 놓고 불만을 표시하거나 집행부에 저항한 사람은 없었다.

- 그동안 두 조직 간 갈등의 골이 깊었다.

황병래 : 김대중 정부 들어 공단 통합이 되면서 직장노조는 '지키려는 자'가 되고, 사회보험지부는 '변화시키려는 자'가 됐다. 서로 반목했다. 그때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말도 안 했다. 직장 출신이냐, 지역 출신이냐를 묻고 따지고 줄을 세웠다. 불행한 역사였다.

성광 : 강제로 통합이 되고 한곳에 갇혀 있다 보니 갈등이 컸다. 한쪽이 파업을 하면 다른 쪽은 대체근무로 빈자리를 메우는 식이었다. 파업한 쪽은 봉급을 못 받아 가는데 대체근무한 쪽은 평소보다 월급을 더 가져갔다. 서로 얼마나 미웠겠나. 각자 '언젠가는 헤어질 거다'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이혼을 전제로 사는데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었다.

- '같이 잘살아 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나.

성광 : 노노 간 갈등으로 돌아온 건 노조의 하향평준화였다. 사측이 한쪽을 죽여 놓고 나면 다른 쪽도 점점 그에 맞춰진다. 단협 조항이 점점 줄어들면서 임금·복리후생 전반이 후퇴했다. 이거 안 되겠다 싶었다. 2006년부터 통합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출발은 미미했다. 두 조직 위원장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고 나왔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2008년부터 공동투쟁을 전개하면서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끼색깔(사회보험지부는 빨간색, 직장노조는 파란색)에 상관없이 같은 버스를 타고 상경투쟁을 하면서 포용력도 커지고 연대의식도 커졌다.

그동안 한 노조만 집회를 하면 사측이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했다. 그런데 두 조직이 같이 공동집회를 하니까 유급으로 인정해 줬다. 두 조직이 한목소리를 내니까 사측에서도 손을 대기 어려운 것이다. 조합원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을 얻지 않았나 싶다.

"통합반대 목소리 받아안고 내부 융합에 최선"

- 통합노조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는 무엇인가.

황병래 : 통합 과정에서 상처받은 내부를 추스르고 융합하는 것이다. 통합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상급단체 선택과 규약·규정을 바꾸는 과제도 남아 있다. 노사관계의 균형성을 찾고 회복하는 문제도 시급하다. 노조가 커지는 만큼 사회적 책무도 커진다. 내부 권익증진 목표를 8로 잡는다면, 나머지 2는 사회적책무를 다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성광 : 임금문제를 풀어야 한다. 공단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 기획재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우리 힘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숙제다. 295개 공공기관이 모두 연대해 정부와 싸워야 할 문제다.

공공기관은 모두 국가사업을 위임받아 일한다. 그럼에도 기관별로 임금이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업종과 수익이 다른데도 하나로 통제해 일률적인 비율을 정해 놓은 결과다. 획일적 기준을 타파해 양극화를 극복하고 평준화로 가야 한다. 통합노조가 그런 부분에서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황병래 : 공단 직원들의 처우는 보건복지부 유관기관 중에서도 최저 수준이다. 공단이 관리운영비를 부담하는 심사평가원과도 임금차이가 5% 정도 난다.

성광 : 2000년 통합 당시에는 (임금수준이) 유관기관 중 하이클래스에 속했다. 복수노조로 오면서 노노 갈등으로 조직력을 임금인상에 결집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 두 조직이 통합하자 의료계가 긴장하는 것 같다.

황병래 : 같은 정책이라도 두 조직이 따로따로 목소리를 내는 것과 1만여명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무래도 다르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걱정하는 (의료계의) 시각이 있긴 하다. 의료공급자와 소비자가 공정한 목소리를 내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동반자적 입장을 형성할 생각이다. 두 조직이 합쳐지면서 정책역량이 향상될 것이다. 제대로 된 정책을 발굴해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광 : 해묵은 노노갈등 구조를 해소했다. 앞으로 노사갈등 구조까지 해소해 공단 전체, 국민 전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통합노조가 앞장설 것이다.

황병래 : 통합노조가 출범하면서 많은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통합노조가 민주성과 건강한 노조로 성장하고,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 구축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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