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전교조 사수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마친 뒤 서울광장 방향으로 삼보일배 행진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전국교직원노조 조합원들이 11일 저녁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노래패의 공연을 보고 있다. 구태우 기자

가을 추위가 찾아온 지난 11일 오후 서울광장 일대는 “전교조를 지키자”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전국에서 올라온 전국교직원노조(위원장 김정훈) 조합원 500여명과 노동·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해고자 배제 거부·노동기본권 쟁취’라고 쓰인 주황색 조끼를 입고 삼보일배·결의대회·촛불문화제·노숙농성을 진행했다.

해직자를 조합원 대상에서 배제하라는 고용노동부의 규약개정 요구에 맞서 전교조는 이날 처음으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노동부의 규약개정 요구에 대한 수용·거부 의사를 묻는 조합원 총투표(16~18일)를 앞두고 열린 집회인 만큼 조합원들은 “규약개정을 거부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훈 위원장은 “머리띠 매는 것 어색하시죠”라고 조합원들에게 물은 뒤 “물러서지 말아야 할 때 물러서지 않는 것이 전교조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전교조가 법을 지키는 것은 (노동부의 요구가 아닌) 4·19와 5·18의 민주주의 역사가 깃든 헌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800여개 단체가 전교조 지지"

“위원장님, 몸상태를 고려해 삼보일배는 하지 않는 것이 어떻습니까.”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삼보일배를 하려는 김정훈 위원장을 설득하며 한 말이다. 단식농성 16일째를 맞은 김 위원장은 징소리가 울리자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날 오후 5시께 ‘전교조 사수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석한 300여명은 삼보일배를 진행했다. 참가자는 “전교조를 지키겠습니다”라고 외치며, 글자에 맞춰 한 걸음씩 내딛었다. 참가자들의 구호가 끝나면,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져 퀴퀴한 냄새가 나는 도로 위에 두 손바닥이 가지런히 포개졌다.

민주노총은 시민선전전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을 인솔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시민 여러분, 우리는 노동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라며 “참교육을 지켜 온 전교조를 시민 여러분이 지켜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보신각에서부터 서울시청까지 삼보일배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관심을 나타냈다. "전교조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힌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이영주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은 “800여개의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전교조를 지키고 있다”며 “이젠 조합원들이 전교조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나에게 전교조는 ○○○○다"

저녁 7시30분께 주황색 조끼를 입은 전교조 조합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학교 수업을 팽개치고 집회에 참석한다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조합원들은 학교수업을 모두 마치고 전국에서 올라왔다.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조합원과 시민들은 “나에게 전교조는 ○○○○”이라고 종이에 썼다.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전교조는 평화·평등·참세상의 모태”라고 썼다. 오 고문은 “처음 열린 노사정 회의에서 교사도 조합원 자격이 있다는 것에 합의했다”며 “조합원 자격은 노조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대통령이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부모인 이은모씨는“학교에서 건강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일이 전교조 없이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이라크 출신 영화감독 코테이바 알 자나비씨는 “폐허가 된 이라크에도 민주주의가 빠른 시일 안에 뿌리내려야 하는데,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일제고사에 반대하다 이명박 정부 때 해직된 박수영 교사가 발언했다. 박씨는 2008년 해직됐다가 2011년 대법원 판결로 복직해 현재 혁신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박씨는 “해직자 선생님들을 지켜 달라고 전교조에 부탁하고 싶어서 나왔다”며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해직된 조합원을 보호해 주는 것이 노조의 역할인데 그걸 안 한다면 노조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 호소했다.

조합원과 시민의 열띤 호응으로 촛불집회는 2시간 동안 뜨거운 분위기를 이어 갔다. 700여명의 조합원과 시민들이 참여했으며, 전교조전국노래패·참여연대 노래패·몸짓선언이 공연으로 분위기를 달궜다.

10년 만의 노숙농성 … "너무 편한 길 걸었나"

“대전지부 여기로 오세요.”“충북지부 여기요.”

촛불집회를 마치고 서울광장 천막농성장에 도착한 조합원들이 경쾌한 목소리로 동료를 찾았다. 밤 11시께 집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삼삼오오 서울광장에 들어섰다. 김정훈 위원장의 단식농성장을 본 한 조합원은 “여기가 우리 위원장님이 자는 곳 맞냐”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천재권 경북지부 조합원은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침낭과 보온용품을 준비했다”며 “10년 만에 서울에서 노숙을 하니 그간 전교조가 너무 편한 길을 걷지 않았나 반성한다”고 말했다. 정영미 전남지부 조합원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함께 대한문 앞에서 노숙한 적이 있다”며 “전교조 일로 노숙을 할 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밝혔다.

자정이 넘은 시각 서울광장의 온도가 급속히 내려갔다. 조합원들은 깔개와 침낭에 의지한 채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노숙농성이 처음이라는 20대 전교조 조합원 고차원씨는 “오늘 조합원·청소년·시민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용기를 얻었다”며 “전에는 학교에서 (이번 사안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 겁났는데, 이젠 돌아가서 많은 얘기를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상자기사] "결의대회 통해 의지 다져" vs "노동부 요구 수용해야"

전교조가 지난 11일 오후 개최한 집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은 해직자를 가입대상에서 제외하라는 고용노동부의 규약개정 요구에 반감을 보였다. 하지만 16~18일 실시되는 조합원 총투표에서 노동부의 규약개정을 수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엇갈린 반응을 나타냈다.

노조 경기지부 조합원 이차영씨는 “노동부의 요구를 받아들여도 해직자를 도울 수 있고, 참교육을 버리는 것도 아니다”며 “단체협약을 맺어도 안 지켜지는데 법외노조가 되면 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노동부 규약개정 요구를) 일단 수용하고 교원노조법 개정운동을 이어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서울지부 조합원 이민숙씨는 "노동부의 규약개정 요구는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98년 2월 노사정 합의 때 노동계가 정리해고와 전교조 합법화를 맞바꿨다"며 "그때 진 빚을 갚는 방법은 인권과 노동기본권을 교육현장에서 잘 가르치는 일인데, 전교조가 단결권을 훼손한다면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전교조 시즌 1이 학교 정상화였다면 시즌 2는 노동자들이 대우받는 세상을 위해 아이들에게 노동자 정체성과 인권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북지부 조합원 A씨는 “규약을 바꾼다고 전교조 탄압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노동부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더 큰 위기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