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철도 산업구조를 유형별로 구분할 때 시설과 운영부문이 통합돼 있는 상하일체형과 이를 분리한 상하분리형으로 나누고, 상하분리형은 분리의 정도에 따라 완전분할 모델과 보수적 분할모델로 구분합니다.

세계철도를 양분하고 있는 일본은 운영회사가 선로 등 시설물을 소유하고 있는 상하일체형 구조이며, 유럽은 대체로 상하분리형입니다. 상하분리는 초기 투자비용이 큰 철도산업을 기능과 노선별로 분할해 매각을 쉽게 하고 민영화를 촉진시키지만 철도안전을 위협하고 네트워크 특성을 파괴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철도발상지인 영국이 과거 영광은 고사하고 유럽에서도 낙후한 철도국가로 전락한 것은 민영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게는 극단적인 분할이 가져온 시스템 붕괴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왜 유럽철도는 이러한 상하분리를 수용한 것일까요.

두 번의 끔찍한 세계대전을 치르고 난 후 유럽 각국은 더 이상 전쟁 없는 유럽을 위한 노력을 전개했습니다.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설립으로 시작된 유럽의 통합노력은 91년 ‘유럽 단일통화제 실시와 공동 외교안보 정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마스트리흐트조약으로 이어졌고 93년 11월 역사적인 유럽연합(EU)이 출범했습니다.

하나 된 유럽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하나 된 철도입니다. 1865년 대륙횡단철도 개통과 함께 13개 주의 느슨한 연방이 미합중국이라는 단일국가성을 가지게 된 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이어 주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첫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철도가 근대국민국가 탄생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죠. EU는 물자와 유럽시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유럽연합 차원의 동일한 철도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시설과 운영을 분리해 이웃 나라 열차(상부구조)가 이웃 나라 선로(하부구조)를 일정한 선로이용료로만 주고 운행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유럽통합을 위해 철도분리라는 역설이 도입된 것입니다.

EU 회원국에게 철도 상하분리를 권고한 EU지침은 이렇게 채택됐습니다. 상하분리는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분리를 통해 민간자본의 선로진입을 가능하게 해 경쟁과 민영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신자유의주의 민영화는 일종의 미신처럼 신봉되던 시기였습니다.

EU 주요 국가들은 유럽통합을 위해 상하분리를 수용해야 했지만 상하분리가 철도특성을 파괴하는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미 영국은 EU지침과 무관하게 철도분할과 민영화를 추진했습니다. 80년대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함께 신자유주의 민영화 선봉장이었던 대처 영국 수상은 집권기간 동안 석유·통신·철강·수도 등 국가기간산업 민영화를 추진했고 그의 후임 존 메이저 수상은 93년 철도 민영화로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얼마 전 ‘대처 장례식도 민영화 방식으로 치르자’고 일갈했던 세계적인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내비게이터’는 영국 철도 민영화가 사회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과 유사한 영국과 달리 보다 유럽적인 정치와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철도 상하분리를 자기 나라 특성에 맞게 추진했습니다. 프랑스는 국영철도회사인 SNCF와 철도건설을 담당하는 공기업인 RFF로 조직을 분리하는 보수적인 상하분리를 시행했습니다. 이에 비해 독일은 독일통일과 함께 통합된 동서독철도회사 전체를 관장하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그 회사 산하에 장거리여객·도시철도·화물철도·시설유지보수·역사관리 회사 등 자회사와 그 산하에 수많은 손자회사를 두는 거대한 독점공기업을 출범시켰습니다. 유럽 패권을 다투는 영국·프랑스·독일철도의 운명은 2000년대 이후 어떻게 변했을까요.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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