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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 역사연구가] "부채 갚는 심정으로 진보운동 개척에 일조하고 싶다"
정기훈 기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다현사)의 박세길(51·사진)씨가 오랜 침묵을 깨고 매일노동뉴스 지면을 통해 독자들을 찾아간다. 그가 대중들 앞에 서는 것은 2007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직을 버리고 성찰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지 6년 만이다.

2008년과 2010년, 그리고 지난해 각각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미래를 여는 한국인사> <자본주의 그 이후>를 집필하며 독자들을 만났지만 공개적인 대외활동 선언은 이번이 처음이다.

10일 오전 서울시 서교동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운동하는 사람의 본모습을 보여 주는 것을 마지막 목표로 삼으려 한다"며 "진보운동가들이 새로운 안목을 가지고 진보운동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일종의 지식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자신을 역사연구가로 소개해 달라는 박씨는 진보운동 안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사고 중 다수가 현실과 심각하게 괴리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매주 월요일자 고정칼럼을 통해 괴리가 나타나는 현상을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증명할 계획이다. 사태 해결을 위한 해법을 진보운동가들 스스로 찾도록 자극하는 것이 목표다.

인터뷰에서 박씨는 "굳어졌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과거 말을 반복하는 것은 진보운동이 극복해야 한다"며 "이제 우리 세대는 새로운 리더를 양산하는 배경이 돼 주고, 그들이 설 자리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 6년 만에 대외활동을 시작했는데.

"전말을 다 밝히기는 이르지만 제 부족함과 잘못으로 인해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려웠다. 성찰과 탐색의 시간을 갖자고 결심하고 2007년 홀연히 떠났다. 치악산 기슭에 원룸을 하나 빌려 산에도 오르고 건강도 회복하는 시간을 2년 정도 가졌다. 이후에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젠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진보운동에 미력하나마 일조를 하고 싶다."

- 칼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진보운동 안에는 다양한 유형의 사고가 존재한다. 그런데 상당수가 객관 세계와 맞지 않는 것 같다. 말하자면 과거 몇 십 년 전에 형성된 사고가 변화하는 현실에 부응하지 못해 화석화된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제 욕심이지만 그 부분을 사실에 근거해서 돌직구를 날리고 싶다. '이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고 자극하고 촉구하고 싶다."

- 지난해 집필한 <자본주의 그 이후>에서 진보운동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했다.

"진보정당 운동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엄정한 성찰과 새로운 모색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다. 실패를 했는데 실패를 했는지도 모르거나, 실패원인을 모르면 실패는 반복된다.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고치려는 노력이 없으면 과정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 젊은 진보운동가들을 양성하지 못한 것을 과오로 꼽았는데.

"젊은 세대는 기존 세대와는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 다른 패러다임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 점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게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한 결과가 후배 양성에 실패한 원인이다. 진보는 사상과 문화에서 가장 앞서가야만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조직문화 측면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현실은 뒤처져 있다. 신세대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다. 젊은 세대는 외환위기 이후 경쟁에서 밀리면 끝난다는 논리, 신자유주의에 농락당하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사기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목격했다. 정서적 수준이기는 하지만 급진화됐다. 정치에서는 야성으로 표현됐다. 지난해 대선에서 세대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나."

- 안철수 현상에 주목하는 이유도 젊은층의 정서 때문인가.

"우리 세대는 이상으로 삼는 미래 좌표가 있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오로지 신자유주의만 주입됐다. 축적된 젊은이의 지적자산을 바탕으로 나아갈 좌표를 제시하고 안내해 주는 것이 우리 세대가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다. 안철수 개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급진화된 젊은이들이 안철수를 향해 '우리를 정치적으로 안내하시오'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정치를 통해 그들의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으로 이해한다. 젊은 세대들이 어떤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가 이런 요구에 맞게 준비돼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평가하지 않겠다."

- 진보운동 세력이 본질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뜻인가.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말한다. 여기저기에 갖다 붙이고 있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냉소주의가 가득하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창조경제라는 용어가 맞는지 틀리는지, 만약 맞다면 제대로 된 개념인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싸워야 한다. 사상투쟁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는 무엇인가를 드러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대응을 못하고 있다.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지금은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는 시기다. 변화가 다방면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존 사상이론은 낡은 것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 낡은 것과의 투쟁이 불가피하다. 진보운동 안에서 사상투쟁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조급하지 않게 긴 호흡을 갖고 차분하게 전개해야 한다."

- 진보운동에서 '낡은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글에서 이야기할 부분이지만, 마르크스·레닌의 사상은 혁명주체와 대상을 명확하게 분리한다는 점에서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 주체와 대상을 수직적 관계로 본다. 현실은 소통의 시대다. 청자와 화자의 구분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 대중보다 위에 있다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현실변화 추이에 맞춰 끊임없이 재구성해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과거와 다른 사상과 이념이 태동할 것이다."

- 다현사의 박세길이 변했다는 말이 나올 것 같다.

"강의에서 만난 이들이 변하신 겁니까? 라는 질문 많이 한다. 만약 내가 옛날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면 사람이 발전이 없냐고 핀잔을 줬을 것이다. 가고자 하는 목표에 충분히 가지 못한 부족함은 인정하고 고백하겠지만, 과거의 모습만 간직한 채 답보하고 있다면 여러분도 절대 나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새로운 나를 창조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그 발버둥이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는 둘째 문제인 것 같다.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특히 진보는 변화에 민감하고,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그런데 감수성이 많이 죽은 것 같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북해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진보의 본모습이 아니라고 본다."

- 고인이 된 이춘자 전 서울노동광장 대표의 남편이신데 고인 생전에 <자본주의 그 이후>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나.

"이춘자 대표는 마지막 결과를 공유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집필 과정에서 이견도 있었고 논의도 했다. 수차례 수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미처 다 공유하지 못했다. 초기 수준만 공유하고 있다가 그 단계를 훌쩍 넘겨 버린 상태에서 떠났다. 통탄할 일이었다. 다만 그 사람은 기성의 것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탐구한다는 것에 절대적 지지와 신뢰를 보내 줬다. 그 내용에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행보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밀어줬다. 믿음직한 나의 최후의 버팀목이었다."

- 칼럼을 시작하기에 앞서 독자들에게 전할 말은.

"돌아보면 진보운동의 중요한 위치에서 역할을 맡아 왔는데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던 것 같다. 오늘날 진보운동에서 일어나는 양상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부채를 갚는 입장에서 자리를 탐하지 않고, 본래 운동하는 사람의 본모습을 보여 주는 것을 마지막 목표로 삼고자 한다. 다들 너무 실천에 집중하다 보니, 너무 열심히 살다 보니 자기 자신의 생각과 모습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탐구하는 시간 동안 가진 자산으로 진보운동에 기여하고 싶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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