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변호사)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1항1호다목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현재 산재보험법은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한 경우만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출퇴근을 위해 회사제공이 아닌 교통수단 이용 중 당한 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출퇴근 중 당한 사고를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증가해 온 터라 헌법재판소가 노동자를 보호하는 취지의 결정을 하리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헌법재판 신청자는 2011년 7월27일 수일간의 집중호우로 회사 건물의 일부가 침수되자 사업주의 비상소집 지시를 받고 오전 8시25분께 자신의 승용차로 출근하다가 도로 주변 산사태로 토사에 매몰되는 사고를 당해 사지마비와 경부척수 압박 등의 진단을 받았다. 당시 회사가 출근을 위해 교통편을 제공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집중호우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평상적으로 하는 출근도 아닌 회사가 요구한 비상소집에 응하다가 당한 사고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피재자는 사고로 인한 부상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법상의 요양급여신청을 했으나 공단은 요양불승인처분을 했다. 이에 불승인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이 진행되던 중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법률의 위헌 여부를 물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의견은 합헌 4명과 헌법불합치 5명으로 갈렸다. 재판관 4명의 합헌 결정요지는 “산재법 제37조1항1호다목이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여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였다.

그러나 다수는 위헌 의견이었다. 재판관 5명의 헌법불합치 의견은 “심판대상조항이 평등원칙에 위배돼 위헌이나, 심판대상조항을 단순위헌으로 선고하는 경우 출퇴근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마저도 상실되는 법적 공백상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잠정적용의 헌법불합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헌법불합치는 위헌 의견의 범주에 속한다.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는 합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엔 이르다. 현행 제도를 그대로 운영하라는 뜻도 아니기 때문이다. 위헌법률심판 제도에 대한 이해를 요하는 부분이다. 법률의 위헌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때로는 다수가 위헌 의견이더라도 위헌으로 결정이 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사건이 그러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오자 “헌법재판소가 보수화됐다. 그럴 줄 알았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목소리도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 대한 비판에만 머무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이제는 의회다. 의회에게는 사실상 위헌을 결정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회가 만든 법률을 존중하는 차원일 뿐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제도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충고다. 다수의 헌법재판관이 위헌이라고 평가하는 법률을 지금까지 보다 합헌적으로 개정하지 않은 것을 반성해야 한다. 합헌 결정이라는 형식을 믿고 개정이 필요 없다고 오판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모든 제도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때에 규범력을 갖는다. 산재보험 제도 또한 그러하다. 과거에는 자가차량에까지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재정규모나 제도운영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노동현실은 많이 변했다.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란 안전한 일자리다. 높은 임금 못지않게 출퇴근 안전도 보장받는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노동을 제공한다는 의미에는 그 부수적인 준비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재정과 현실적인 운영 문제는 사소한 부분이다. 노동자로서는 안전한 일자리를 위해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부담자를 확대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의회는 하루빨리 규범력을 갖는 새로운 산재보험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같은 법률이 다시 헌법재판소 심판대상이 된다면 그땐 재판관 9명 모두가 위헌 의견을 제출할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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