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기자

“송전탑이 우리 삶을 완전 뒤집어 놨어요.”

경남 밀양 단장면 동화전마을에서 온 김정회(41)·박은숙(41) 부부는 요즘 서울에서 밥을 굶는다. 부부가 대한문과 서울시청 앞을 번갈아 지키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밀양 송전탑 공사를 멈춰 달라"며 지난 2일 한국전력공사 본사가 있는 곳이자 전기의 최다 소비지인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단장면에는 765킬로볼트(kV) 초고압 송전탑 21기가 들어설 예정이다.

밀양 정착해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김씨는 외환위기 때 창원의 방위사업체를 그만두고 귀농을 결심했다. 2002년 부인 박씨의 고향인 밀양에 정착했다. 친환경 농사에 뜻을 두고 쌀·브로콜리·양파·대파 등을 키웠다. 고생은 많았지만 보람은 컸다.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우리 농작물을 받은 사람들이 ‘참 맛있다’고 말하더군요. 그게 참 좋았어요.”

아내 박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우리가 지은 농산물로 음식을 지어 먹을 때 행복했죠. 밀양에 정착해서 정말 좋다 싶었어요.” 남편 김씨가 말을 받았다.

하지만 2008년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면서 부부의 삶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송전탑이 그들의 집 앞산에 세워진다는 소식이 들렸다. 자연스레 공사 반대 싸움에 합류했다.

“귀농을 준비하며 겪어 보니 한곳에 정착한다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부당함과 싸워 보지도 않고 땅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한전 직원들은 새벽을 틈타 공사를 진행했고 주민들은 하던 일을 접고 현장으로 뛰어가 이를 막았다. 지난해부터 김씨는 송전탑 반대 동화전마을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공사를 막다 한전 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부부는 “싸움도 힘들었지만 한전이 계속 거짓말만 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전은 한 번도 주민들과 진정성 있게 대화한 적이 없어요. 송전탑이랑 상관없는 마을에 가서 찬성표를 받고는 주민들과 합의했다고 선전하고, 마을 주민들을 이간질하고. 정부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같은 농민들도 선로를 땅에 묻는 선로 지중화 같은 대안을 연구하고 내놓는데 왜 무조건 대안이 없다고만 하나요?”(박은숙씨)

“당장은 우리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는 문제지만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안 될 일이에요. 일본 후쿠시마를 보면 알잖아요. 사고가 나면 온 국민이, 미래세대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겁니다. 선진국은 원전을 줄인다는데 왜 우리나라만 위험한 노후 원전까지 돌리려는지…. 그리고 한전은 자기가 관리를 잘못해 일어난 전력난 책임을 왜 밀양 할머니들에게 돌리나요?”(김정회씨)

현재 밀양에서는 공사가 강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 할머니들이 계속 다치고 있다. 소식을 접한 부부는 "속이 디비진다(뒤집힌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부는 주민 이야기 직접 들어야"

“동네 형님들이랑 이따금 통화하는데 많이 힘들다고 합니다. 한전 직원은 뒤에 서 있고, 경찰들이 잔뜩 와서 할머니들 밥도 못 먹게 하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어요.”(김정회씨)

“언론까지 외부세력 운운하면서 할머니들 고립시키는 게 너무 안타깝고 무서워요. 할 수만 있다면 국민 한 사람씩 다 만나서 밀양 현실이 어떤지, 송전탑이 얼마나 위험한지 얘기하고 싶어요.”(박은숙씨)

부부는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주민과 대화하자”고 정부에 호소했다.

“크게 보면 정부가 에너지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 얘기를 좀 들어주세요. 다른 대안이 정말 없는지 찾아보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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