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복수) 노동조합 만들었어. 너희 끽해야 40%도 안 돼. 우리가 60% 넘어. 법무사가 만들어 줬어. 과반수가 이겨. 무조건…."

역시나 사용자의 비밀병기는 복수노조였다. 케이블방송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이중차별과 부당한 대우에 맞서 한번 싸워 보겠다고 노조를 만들자, 사용자가 "(복수) 노조를 만들었다", "과반수 넘은 놈이 무조건 이긴다"고 노동자들을 협박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런 내용은 이달 1일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가 공개한 부산 낙동강고객센터 이아무개 사장의 발언 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사장은 녹취록을 부인했지만 이미 낙동강고객센터에서는 직원 27명 중 17명이 회사가 만들었다는 새 노조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어디서 많이 보던 줄거리다. 지난해 노동계를 휩쓸었던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쏙 빼닮았다. 기존 노조 무력화를 위해 파업을 유도하고 직장폐쇄와 용역경비를 동원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사전단계가 생략됐을 뿐이다. 회사노조 설립으로 노조를 분열시키고 교섭권 행사를 막는 기본 절차는 같다. 원청 노사관계에 불거졌던 노조무력화 패턴이 하청 노사관계에 그대로 전이된 셈이다.

노동자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제도가 사용자에게 전가의 보도로 전락한 것은 어찌 보면 예정된 결말이다. 2년 전 해당 제도가 시행될 때부터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2011년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되자마자 조합원이 100여명도 되지 않는 택시·버스 사업장을 중심으로 회사 지원을 받은 노조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른바 '강성'으로 불리는 금속노조 사업장에서는 전문 노무컨설팅업체가 동원돼 회사 지원노조를 만들어 기존 노조 와해에 나섰다. 사용자는 회사노조가 과반수가 넘으면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기존 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고, 과반수를 점하지 못하면 개별교섭으로 노조 간 차별을 두는 전략을 썼다. 사용자에게 전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된 창구단일화 제도 탓이다.

여기에 감독의 책임이 있는 정부마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눈감아 주면서 사태를 키우고 있다. 유성기업·보쉬전장·KEC 등 대표적인 노조파괴 사업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2년이 지나도록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용자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조항을 두려워할까.

더군다나 고용이 불안한 하도급 노동자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제 막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티브로드에서 회사 지원을 받는 복수노조 등장이 걱정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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