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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증권이 지난달 27일 민경윤(44·사진) 민주금융노조 현대증권지부장에게 징계 관련 사실조사를 벌이겠다고 통보했다. 양정위원회나 징계위원회를 열기 전에 징계사유에 관한 사실조사를 먼저 벌이겠다는 것이다. 이보다 25일 전에 부위원장 2명에게도 같은 내용의 조사 통보가 이뤄졌다. 현대증권지부 전임자 5명 중 3명이 징계를 받을 처지에 놓인 것이다.

대체 현대증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 1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민경윤 지부장은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노-사 관계가 아니라 노-황 관계”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황’은 황두연 ISMG코리아 대표를 뜻한다. 황 대표는 지부가 ‘현대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로 지목했던 인물이다. 그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비선’으로 부당한 경영개입을 하며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현대증권의 노사관계가 불편해진 이유는 현대그룹의 숨겨진 약한 고리를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게 지부의 주장이다.

지부의 폭로는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지부는 같은달 7일 노사관계 관련 녹취록을 공개했다. “제가 온 김에 (노조의) 뿌리를 뽑겠다. (파업할 경우) 100억~200억원 압류(를) 걸면 개인은 못 버틴다”는 윤경은 당시 부사장의 얘기를 담고 있는데, 현대그룹 임원들이 모여 진행한 대책회의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황 대표는 같은달 14일 두 번째 폭로에서 등장한다. 지부는 윤 대표를 ‘현대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라고 불렀다. 그가 그룹 계열사 사장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열고, 현대그룹이 진행하는 사업의 전권을 행사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녹취됐기 때문이다. 지부 관련 대책회의도 황 대표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부는 올해 6월에는 다시 황 대표가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케이맨제도에 자리 잡은 헤지펀드 운용사 설립을 주도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황 대표가 이권에 개입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이 황 대표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이다.

지부 간부의 징계절차 착수의 배경에는 이런 일련의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 징계 관련 조사 내용에 민 지부장이 취임한 2005년 이후 사건이 포함된 것도 같은 이유다. 민 지부장은 “2005년부터 현재까지 사규위반 사실을 조사하겠다는 내용”이라며 “2005년부터 대표이사들을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했으니 모두 조사해서 징계하겠다는 것인데, 징계를 위한 징계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 지부장에 앞서 징계 관련 조사 통보를 받은 이동열 수석부지부장은 “나에 대한 징계사유도 지부장과 같은데, 노조 일을 시작했던 2010년 이전 내용도 있었다”며 “지부장의 임기가 시작했던 때부터 회사가 불편했던 일들을 징계사유로 묶어서 올린 듯하다”고 설명했다.

지부는 8월께 회사가 단체협약을 해지한 뒤 이어지는 교섭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으로도 분석했다. 회사로서는 교섭이 성사되든, 결렬되든 징계라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알죠. 노조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간부들이 고초를 당할 수도 있죠. 지부도 처음(2003년)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현정은 회장을 지지했어요. 그런데 현 회장이 (경영권을 장악한 뒤에) 대리인을 내세워 경영을 하고, 그 과정에서 불법비리가 많았어요. 현대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불법 경영개입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일입니다. 노조가 어려워지더라도 우리 사회 전체에서 현대그룹이 차지하는 역할을 볼 때 공익이 우선이라고 본 거예요. 피해가 있더라도 정리를 해서 현대그룹을 살려야 합니다. 현대그룹은 금강산 사업 등 대북사업을 하는 기업이에요. 황두연씨와 그의 인맥을 정리하고 현대그룹이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민 지부장은 검찰 수사에 자신감을 보였다. 현대증권 관련 검찰 수사는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남부지검이 진행하고 있다. 중앙지검은 황 대표의 비자금과 불법경영에 관한 수사를 하고 있다. 남부지검은 지부가 고발한 부당노동행위와 명예훼손, 회사가 고발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수사를 맡고 있다. 최근 남부지검은 회사를 무혐의 처분하고, 지부를 불구속기소했다. 지부는 서울고검 항고를 준비하고 있다.

민 지부장은 “남부지검의 판단은 아쉬움이 남지만 황두연씨의 불법 비자금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며 “메인은 중앙지검의 비자금 수사”라고 못 박았다.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있어 항고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억울한 것은 기소나 불기소가 아니라 회사가 남부지검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징계절차를 밟는 것”이라며 “지부가 바라는 것은 회사를 투명하게 경영하고, 대화를 나눠 신뢰를 쌓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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