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를 앞두고 경기도 성남시 정자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건설노조(위원장 이용대)가 체불임금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투쟁조끼를 어색하게 걸친 한 노동자가 기자 곁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까지 잠실 롯데월드타워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김아무개씨였다. 그는 자신을 간략히 소개한 후 사연을 털어놓았다.

“오다가다 우연히 하청업체와 중간알선업자가 쓴 계약서를 봤는데요. 거기에 제가 일당을 17만원을 받는 것으로 적혀 있었어요. 그것보다 훨씬 못받는데 말입니다. 업자한테 계약서대로 달라고 따졌죠. 그랬는데 며칠 뒤 일이 없다며 다른 데 알아보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렇게 김씨는 지난달 중순 일자리를 잃었다. 밀린 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몰라 노조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쉰 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건설노조 조합원이 됐다.

김씨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이유는 건설현장에 뿌리박힌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이다. 건설산업기본법상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법을 지키는 곳은 거의 없다. 자연 임금저하·체불·고용불안으로 이어진다. 산재 증가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민주당이 두 명의 여성 의원과 을지로위원회를 앞세워 개최한 토론회는 건설노동자들의 헛웃음을 자아냈다. 당시 토론회는 공공공사 분리발주에 초점이 맞춰졌다. 최소한 공공공사만이라도 원청(종합건설사)을 거치지 않고 전문건설업체에게 직접 맡겨 중간착취를 없애자는 것이다.

언뜻 민주당이 고심하는 ‘을 지키기’라는 주제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민주당이 간과한 게 있다. 전문건설업체의 영향력이 커지면 안 그래도 다단계 하도급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건설노동자들의 피해가 더욱 커진다는 사실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건설산업연맹 간부가 “하루 4천원의 퇴직금을 떼먹고 산재를 방관하는 건설사에 공사를 바로 맡기는 것은 우리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하소연한 까닭이다.

건설산업을 생태계에 비유하자면 건설노동자들은 먹이사슬의 최하층에 놓여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 전문건설업체는 불법다단계 하청구조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무서운 포식자일 뿐이다. 민주당은 '하청업체=을'이라는 단순한 공식에 갇혀 정작 '슈퍼을'의 눈물을 못 보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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