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섭
변호사
(금속노조법률원장)

지난 5일 대법원에서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재판 관련 공개변론이 있었습니다. 법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통상임금과 장시간 근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얘기를 한참 듣고 계시던 운전기사님이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며칠 휴가를 내고 어디를 꼭 가야 하는데 회사 눈치가 보여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했습니다.

초과근로를 하려면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말뿐입니다. 기사님은 회사에서 짜는 근무편성표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아프거나 쉬고 싶다고 초과근로를 안 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날의 통상임금 재판은 바로 그 문제를 다뤘습니다. 노동자측은 통상임금에 대한 법원칙을 바로잡아 장시간 저임금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용자측은 경제적 파급효과 운운하면서 현 상태를 법이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용자측은 공개변론 전부터 재판과정에 이르기까지 통상임금의 정상화로 인해 기업부담이 38조원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기업의 경영악화로 이어진다는 비법리적인 주장까지 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려 했습니다.

재계와 보수언론들은 통상임금 때문에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8년부터 4차례에 걸친 법인세 인하에 따라 기업의 법인세 감소분이 5년간 총 63조8천억원에 달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법인세 감소분도 4조1천883억원에 이릅니다. 또한 국내 45개 기업집단의 사내유보금은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기준으로 313조326억원이나 됩니다. 기업의 영업이익률과 더불어 법인세 감소분이 기업 내에 쌓인 결과입니다.

통상임금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기업부담액은 법인세 감소분과 축적된 사내유보금으로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더욱이 기업의 부담액은 고정불변의 수치가 아닙니다. 기업의 근로시간편성에 따라 얼마든지 감소하는 것입니다. 통상임금 증가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이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을 넘어서는 초과·연장·야간근로에 대한 수당산정입니다. 재계는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설문조사에서도 통상임금 패소시 기업의 대응을 묻는 질문에 많은 기업들이 초과근로시간을 단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초과근로를 억제하고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해 명실상부하게 주 40시간제가 정착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통상임금을 정상화하는 것은 근로시간단축과 청년고용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법내 근로의 대가보다 초과근로의 대가가 더 적게 드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초과근로에 대한 유혹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형적인 임금구조는 그동안 산업현장에서 연장근로와 휴일·야간근로를 유인하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장시간 노동 1위, 산업사망률 1위, 자살률 1위는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을 나타내는 부끄러운 숫자입니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숫자입니다.

통상임금을 정상화해서 시간당 통상임금과 초과근로에 대한 임금의 격차가 줄어들게 되면 산업현장에서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에 대한 유인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총 근로시간도 지금보다 많이 줄어들 것이고 청년고용이 늘어날 것입니다. 물론 통상임금 문제가 근로시간단축과 고용창출의 전부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통상임금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은 근로시간단축과 고용창출이라는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주요한 방안임이 명백합니다.

앞으로 대법원의 판결선고가 남아 있습니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재계의 비본질적인 주장 앞에 사법부의 법원칙이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법부는 최고의 법해석 기관으로서 통상임금에 대한 법리를 선언해야 합니다. 그에 따른 경제적인 우려를 최소화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입니다.

사법부는 통상임금의 법원칙을 바로 세우고, 행정부는 법원의 판결이 노동현장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동행정을 펼치면 됩니다. 그것이 통상임금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는 방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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