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다시 선거다. 금속노조 임원 선출을 위한 조합원 투표가 24일부터 진행 중이다. 지엠지부·기아차지부·현대차지부 등 기업지부들과 지역지부들, 그리고 지회들까지 금속노조의 각급 조직단위의 임원 선출을 위한 선거로 2013년 가을이 흘러가고 있다. 어디 금속노조뿐이겠는가. 많은 노조들에서 임원선거가 진행됐거나 진행될 것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노조 규약으로 임원의 임기를 정하되 3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제23조 제2항). 최소한 3년에 한 번은 임원선출을 위한 선거를 진행해야 하니 이 나라 노조들은 2년 또는 3년마다 임원선거를 진행해 오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조합원들이 직접 투표해서 위원장 등 임원 선출하는 선거하는 노조를 두고서 민주노조라고 불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쟁취한 민주노조는 그런 것이었다. 어용노조에 대해서 민주노조의 징표는 조합원이 직접 투표로서 위원장을 선출하는 것이냐 아니냐라고, 1987년 이후 노조는 스스로 어용노조라고 취급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 소속을 불문하고 조합원 투표에 의한 위원장 선출로 노조 조직을 운영해 왔다. 거기까지였다. 그곳에서 멈췄다. 노조의 민주주의는 위원장 등 임원 선출에서, 26년 전 그 시간에서 멈추고 말았다. 하나 더 있긴 하다. 단체협약 체결시 총회 인준이 있다. 이 총회 인준권은 대법원 판례로 노조 규약에 이에 관한 조항이 있을 경우 사용자가 교섭을 거부하더라도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노조법이 대표자 위원장이 서명 날인한 단체협약 효력을 좌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법적으로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위원장 등 임원 선출을 조합원의 직접 투표로 하는 것이 민주노조와 어용노조를 가르지 않는 오늘은 이 총회 인준으로 이를 가르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쟁의행위 찬반투표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노조가 아니라도 노조법은 쟁의행위에 앞에 반드시 조합원의 직접·무기명·비밀의 투표로 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제41조 제1항) 어용노조라고 해도 피해갈 수가 없다. 이상의 것이 이 나라에서 노조의 민주주의이다. 이것 말고 더 무엇을 노조의 민주주의라고 내세울 것이 없다. 1987년은 한국현대사에 민주화운동의 해라고 새겨졌다. 1980년대 대학을 붉게 달궜던 민주주의가 1987년의 거리와 광장에서 대통령 직선제로 정신없이 달려 나가던 민주 쟁취의 6월이었다. 그리고서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다. 어용노조는 조합원 직선제로 민주노조의 간판을 달았다. 1987년은 한국노동운동사에 민주노조의 해라고 새겨졌다. 바로 여기서 그 뒤 26년 이 나라 노조의 조직운영이 이뤄졌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5년마다 대통령선거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며 실시됐다. 그리고 2년 또는 3년마다 임원선거가 노조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며 실시됐다.

2. 몇 팀일까. 하나 둘… 일곱… 어떤 조직이냐 보단 어째서 다른 조직으로 갈라져 나왔을까가 궁금하다. 민주노동자·금속힘·민주현장연대·연합조직(기노·구원투)·구 미래노·도전과 반격·혁신·노동자해방전선·현장노동자. 추석 직전에 기아차 지부와 지회의 임원후보 등록자들의 이름과 소속 현장조직을 카톡 문자로 보며 나는 이번 선거는 다른 때보다 많이 나왔다고 결선에 오르는 게 관건이겠다고 읽었다. 그 현장조직들은 이 나라 노동운동의 전망을 어떻게 일곱색으로 다르기에 다르다고 내세우고 있는 걸까. 낯익은 현장조직과 새로운 조직의 이름으로 성향을 떠올려 보았다. 후보들은 기아차에서 노조운동의 방법을 어떻게 일곱 가지로 다르기에 지부 임원이 돼야 한다고 나온 것일까. 낯익은 이름에서 얼굴을 떠올리며 궁금했다. 기아차지부, 사업장의 노조조직이다. 이 나라에서 사업장의 노조조직은 어찌 보면 노동운동이 현장노동자를 만나 조직하고 노동자권리를 세우기 위해 활동하는 최일선의 노동자조직체이다. 이것이 망가져서는 노동운동은 아예 희망이 없다.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와 민주노총이 노동자를 노동자권리 위한 투쟁으로 조직해 내지 못하는 조건에서 그나마 이 나라 노조운동이 노동자권리를 위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사업장의 노조조직 때문이다. 전망과 방법이 다르다면 다른 것으로 조합원의 선택을 받아서 사업장 노조권력을 행사한다면 그게 일곱이 아니라 열이라도 뭐가 문제이겠는가. 나는 일곱팀이나 나와서 걱정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 운동의 전망과 방법으로 분명히 구별될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을 걱정한다. 기아차 노동자의 권리, 나아가 이 나라 노동자의 권리를 어떤 것들로 채워 내고 어떻게 쟁취해 낼 것인지 그것이 분명히 다르다고 읽을 수 있는 선거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것이 이번 기아차지부 선거를 관전하는 내 시선이다. 그런데 노조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르게 주장해서 공약에 내세울 것인가. 지금까지 노조 임원선거를 보면 노조 민주주의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에 관한 공약은 찾기 어려웠다. 1987년 이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이 나라에서 국민이 어떻게 국가의 의사 결정과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할 것인지, 특별한 논의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위원장이 돼서 자본을 상대로 어떤 노동자권리를 쟁취하겠다고 공약했을 뿐 조합원이 노조에서 어떤 노조의 의사를 결정하고 행사하도록 권한을 보장하는 걸 추진하겠다고 특별히 공약하지 않았다. 위원장을 직접 선출하는 것이 노조의 민주주의이니 더 무얼 실현하겠다고 공약하지 않았다.

3. 노조는 조합원이 균등하게 그 노조의 모든 문제에 참여할 권리를 갖고(노조법 제22조),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조직 운영이 보장되도록 규약을 정해서(노조법 제11조) 노동자 스스로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해서 노동자권리를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여야 한다(노조법 제2조 제4호). 특히 규약의 제개정·임원의 선거와 해임·단체협약·예산 및 결산·기금의 설치 및 관리 또는 처분·연합단체의 설립 및 가입 또는 탈퇴·합병 및 분할 또는 해산·조직형태의 변경, 그리고 그 외에 노조에서 기타 중요한 사항까지 반드시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노조법 제16조 제1항). 이것은 노조법이 정한 노조의 조직운영이다. 그야말로 노조의 주요한 의사결정은 조합원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주권자라고, 그래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다(헌법 제1조 제2항). 하지만 대통령의 선거(헌법 제67조), 대통령의 필요시 국가안위에 중요정책의 국민투표(헌법 제72조), 헌법개정안의 국민투표(헌법 제130조)가 대한민국의 국가에서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선거를 제외하고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행사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근거일 뿐 원칙적으로 그 국가의 의사결정이나 행사할 주체가 아니라고 헌법은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 조합원과 대한민국 국민은 이렇게 그 권한이 다르다고 법은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규정한 위 노조법조항들을 읽는다면 노조에서 조합원은 중요한 조직운영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자다. 그저 법대로라도 민주주의를 규약 등에 정하고서 노조의 조직운영을 하기만 한다면 1987년 이후 지금까지 노조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것일 수 있었다. 위원장 직선제를 넘어서는 민주주의를 노조 조직운영에서 확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자본과 권력에 맞서 교섭과 투쟁으로 쟁취해야 하는 노동자권리와 노동기본권과는 다르다. 노조 스스로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나라에서 노조의 민주주의를 두고서는 자본과 권력을 탓할 일이 아니다. 이걸 두고서 1987년 체제가 어떻고 그것이 갖는 한계가 어떠니 할 일도 아니다. 과연 이 나라에서 노조를 노동자 스스로 주체가 되어 노동자권리를 도모하는 노동자의 단결체로 바라보느냐 아니냐 하는 그야 말로 노조법 제2조 제4호에서 정한 노조의 정의를 읽어내는 일이다.

4. 2013년 가을, 노조는 선거를 한다. 그런데 노조의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국가권력의 민주주의를 걱정해도 노조의 민주주의는 걱정하지 않는다. 자본과 권력에 맞서 어떤 노동자권리를 쟁취하겠다고 공약하지만 정작 그 권리 쟁취를 위해 어떻게 노동자가 노조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권한 행사하도록 할 것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위해서 투표해 달라고 그러면 그걸 쟁취하기 위해 죽어라 일하겠노라고 다투어 말하고 있다. 다르다. 이미 1987년에도 대한민국과 노조의 조직운영은 달랐다. 그런데도 다르지 않다고 권력의 직선제와 하나라고 그것이 무엇이라도 민주화라고 그대로 변함없이 달려 왔다. 무슨 거창하게 노동자의 민주주의니 어쩌니 하며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노조법이 본래 규정한 대로 그것을 노조에서 실현해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규약으로 대의원회로 갈음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해도(노조법 제17조)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요에 따른 것이니 극히 예외인 사항에서만 갈음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사항이라도 조합원의 의사를 조직적으로 수렴할 장치를 마련해서 노조의 의사가 결정되고 권한이 행사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나는 이렇게 법대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 노조의 민주주의에서는 한참 앞서 나간 말이 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앞서 나간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1987년 이후 이 나라 노조가 그 조직운영의 민주주의에서 한 걸음도 더 내딛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꾸는 꿈은 자본과 권력의 꿈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은 노조 등 노동자의 단결체에서 실현될 노동자의 민주주의에 크기에 따라 현실에서 그려질 것이다. 민주주의, 그것은 노동자가 꿈꿀 수 있는 자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단결체에서 끊임없이 보다 새롭게 실현돼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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