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지난해 11월 경기도 양평의 한 지역신문에서 수습기자로 일하던 여성에 대한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신임국장이 청년인 수습기자를 환영하는 술자리에서 저지른 일이었다.

신임국장은 “수습에게 인권이란 없어. 수습은 쓰레기야. 수습은 개야, 개”라는 말로 수습기자의 인권을 모독했다. 그리고 수차례 거부의사를 밝혔음에도 억지로 손을 잡고 차마 묘사하지 못할 성추행을 저질렀다. 사건 당시 술자리에는 회사 대표가 동석하고 있었지만 술자리의 분위기는 ‘뭘 그런 걸로’라는 식의 방관이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되는 분위기였다.

무거운 유리벽을 느꼈다. 피해 수습기자는 치욕감을 참으며 대표와 면담해서 가해자 처벌과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징계는 형식적이었고 사과는 말뿐이었다.

피해 수습기자는 4개월 넘게 홀로 싸웠지만 유리벽은 너무 단단했고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수습에다 어렸고 여성이었다. 힘이 없었다. 피해 수습기자는 계속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며 보고를 올려야 하는 것은 물론 ‘사회에서 겪게 되는 여러 경험 중 하나’라는 식으로 사건을 치부하는 대표의 눈치까지 볼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청년은 휴직계를 제출했다. 그럼에도 청년은 싸우기로 결심을 하고 청년유니온에 도움을 청했다.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청년유니온의 이름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요구 조건은 간단했다. 해당 지역신문의 공개사과와 피해자에 대한 보상, 체불임금 지급 및 재발방지 조치였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았던 대표는 계속 시간만 끌더니 결국 법적으로 해결하자고 귀와 눈을 닫아 버렸다. 가해자도 인권이 있다면서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줬다. 문제 제기에 대해서 “왜 휴머니즘이 없냐”고 나무랐다. 성추행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공개사과가 지켜져야 할 인권이고, 정당한 문제 제기가 비인간적인 처사라는 말이었다.

힘이 없고, 어린 청년에, 여성인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세상은 이처럼 먹먹했다. 죽을 생각도 해 봤다던 수습기자의 고백은 지난해 충남 서산 피자집에서 사장의 성추행에 아무런 이야기도 저항도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떠올리게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아르바이트 여성노동자와 수습 여성기자와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싸워야겠다는 의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내가 잘못한 것 같은지에 대한 의문, 함께 싸워 줄 노조를 만나는 것 단 세 가지였다. 그들의 직위와 업무는 달랐지만 그들이 느꼈을 치욕과 사회의 편견, 말할 곳 없었던 무력감은 같았다. 한 명은 하지 못했고, 한 명은 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격차, 여성과 남성의 임금격차, 고졸과 대졸의 임금격차처럼 '보이는 노동 격차'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청년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유리벽은 수치로도 문서로도 드러나지 않는다. 어렵게 결심하고 억울하게 토해 낼 수밖에 없는 그 목소리에서만 차별이 드러난다. 가해자가 가벼이 던진 농담 속에서, 친해지자고 시작한 술자리에서, 업무가 아닌 곳에서 청년 여성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과 맞서 싸우고 있다. 힘도 없고 편도 없다. 보이지 않는 어떤 분위기의 차별은 청년들을 더욱 어렵게 한다.

지위와 직책, 경력이 달라도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불편한 관계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잘못된 것은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선임자나 대표, 상사에게 업무나 일이 아닌 감정과 신체까지 담보로 잡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추행과 범죄라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청년, 그리고 여성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문화적 위계와 보이지 않는 폭력은 그래서 불평등하다. 나이가 어리다고, 수습이라고, 아르바이트라고, 여성이라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모든 노동현장은 불평등한 현장이다.

이제 10월 초가 되면 청년 수습기자는 취업규칙상 휴직기간을 초과해서 다시 회사에 복귀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사과를 요구하며 죽기보다 싫은 그 회사로 다시 돌아갈 결심을 다지고 있다. 여기서 일을 그만둬 버리면 본인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마주해야 할 피해의식과 괜한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 자책하며 살게 될 것이 두려워서다. 2013년 그가 마주한 우리 사회 노동의 유리벽은 아직 너무나 단단하다.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yangsou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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