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핵심 국정과제로 ‘국민대통합’을 내걸었다.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지난 7월 현판식을 갖고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했다. 슬로건은 ‘함께하자, 대한민국’이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은 해직언론인과 면담을 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100% 국민대통합을 약속한 박 대통령 입장에선 국민대통합위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을 되돌아보면 국민대통합은 구호만 남았을 뿐 실종됐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국민대통합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박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인정했다. 박 대통령 스스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내 리스크’를 언급했다. 위기는 내부에도 있다며 갈등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민낯을 드러낸 셈이다. 국민대통합이 실종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적인 요인은 여러 가지를 거론할 수 있다. 정부 출범 후 잦은 인사 실패,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스캔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여야의 정쟁이 이어졌다. 이런 일은 박 대통령이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박 대통령의 밀실인사, 정치력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다. 적어도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거나 또는 악화시켰다는 주장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사과하고, 입법기관인 국회 중심으로 국정원 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야 대치상황을 풀고, 국민대통합 행보를 시작할 수 있다. 일단 청와대가 추석 전인 16일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는 3자 회담을 수용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박 대통령이 꼬인 정국을 풀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3자 회담에서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해법을 도출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야가 빗장을 열면 국민대통합에 성큼 다가설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는 국민대통합과 복지 확충을 공약했지만 정부 출범 후 6개월 동안 갈팡질팡했다. 경제정책을 짜고 진두지휘하는 기획재정부와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의욕을 갖고 추진했던 증세계획을 철회했다.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증세 계획이 후퇴됐다. 그러자 기획재정부는 세수추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정부가 영세 유흥음식점에도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려 하자 지난 10일 유흥음식점 주인이 이에 항의해 분신했다. 기획재정부는 또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공약사항인 무상보육 예산의 국고지원 비율도 삭감했다. 당초 여야는 무상보육 국고지원 비율을 40%로 합의했는데 기재부는 30%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정부에 국고지원을 촉구했으나 울고 겨자 먹기로 빚(채권 발행)을 내어 무상보육을 지속하기로 했다. 반면 타 시도지사들은 정부의 이런 조치에 집단 반발하고 있다. 재원 마련을 산수로 하려는 기재부의 꼼수 탓에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사회정책은 안중에도 없는 경제부처가 독주하는 모양새다.

적어도 국민대통합과 복지확충을 약속했다면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은 균형 내지 병행되는 게 맞다. 그런데 경제부처에게 사회정책은 여전히 경제정책의 하위 범주다. 갈등관리 영역에 불과할 뿐이다. 박 대통령의 측근이나 실세가 사회부처 장관에 임명되면 뭐하나. 실세 장관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목소리는 국무회의에서나 갈등이 일어나는 곳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사회부처는 경제부처가 일으키는 풍파를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다. 고용과 노사 분야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를 내걸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경제부처의 독주라는 지적이다. 노사관계와 함께 가는 고용 또는 일자리 창출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정부 출범 후 고용률 70% 청사진을 만들었던 고용노동부는 정부 내에서 설 자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적어도 경제부처의 독주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대통합은 요원하다. 복지국가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박 대통령부터 인식을 바꿔야 한다. 장관급 인사들도 복지부동하지 말아야 한다. 고용·노사 분야만 국한하면 고용노동부 장관·노사정위원장·중앙노동위원장·고용복지수석이 자주 만나야 한다. 정책 협의를 통해 고용·노사 분야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부처가 추는 춤에 장단만 맞추지 말라는 것이다.

때마침 지난 6일 박길상 전 노동부 차관이 중앙노동위원장으로 내정되면서 고용·노사 분야 장관급 인사가 마무리 됐다. 노사정 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려면 정부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고용·노사 분야의 장관급 인사들이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되 무작정 경제부처들에게 끌려가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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