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중앙일보 지난 10일자 사설 <갈등 관리 맹점 드러낸 보호관찰소 이전 논란>의 결론은 법무부가 밀어붙이기만 할 게 아니라 성남시 분당지역 학부모들의 이전 반대를 님비로만 보지 말고 서로 대화하라는 거다. 법무부와 주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대화하라는 거다. 매우 중립적이고 상식적인 결론이다.

그러면서도 중앙일보는 “정부가 보다 합리적인 갈등 해결 모델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정부쪽에 공을 슬쩍 넘겼다.

박근혜 대통령마저도 님비라고 일축했던 보호관찰소 분당 이전 문제는 주민들의 항의집회 단 한 번에 5일 만에 원전에서 재검토로 후퇴했다. 이를 두고 한 신문은 <분당의 힘>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아무튼 중앙일보는 보호관찰소 이전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님비 현상에 정부의 정책이 계속 표류해서도 안 된다”는 사족을 달긴 했지만 주민과 소통 없이 일방통행식 행정으로 밀어붙여 갈등이 증폭됐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틀 뒤 12일자 같은 중앙일보 <밀양 송전탑 공사는 재개돼야 한다>는 사설은 일방적으로 정부 손만 들어주고, 주민들에게 이젠 반대투쟁을 멈추라고 주문한다. 우선 사설 제목부터 이틀 전 ‘이전 논란’이란 중립적 제목과 달리 “송전탑 공사는 재개돼야 한다”고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12일자 중앙일보 사설은 “정부가 법을 바꿔 가며 어렵게 내민 손, 이번엔 밀양 주민이 타협과 화해의 마음으로 잡아줘야 할 때”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문장엔 그동안 정부는 최선을 다해 주민들과 소통하려 했는데 주민들이 막무가내로 반대만 해 왔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이 사설에서 중앙일보는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를 향해 “버틸수록 더 보상받는다는 나쁜 선례를 남길까 걱정일 정도”라고 힐난했다. 문제의 본질에 한 치도 접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내가 만난 밀양의 반대 주민들은 한결같이 “보상 필요 없다. 그냥 이대로 살 수 있게 해 달라”였다.

송전탑이 통과하는 밀양의 1천584세대 주민 중에 1천813명이 보상 반대 서명에 동참한 사실쯤은 우습게 무시됐다. 총리는 오후 4시10분에 대책위 주민들과 면담 잡아 놓고 50분 뒤 태양광발전설비 지원 MOU 체결식을 열겠다고 했다. 대책위 주민들은 기만당했다고 충분히 느낄 만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마저 간단히 무시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정부와 한국전력은 법을 바꿔 가면서까지 밀양 주민 지원에 나섰다”고 그 노력을 치하했다. 법 개정과 총리의 추가 지원약속으로 1천800가구 주민들은 가구당 약 400만원을 직접 받게 됐다고도 했다. 중앙일보는 한 가구당 400만원씩 현금보상을 받는 게 “주민들의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였다”고 주장한다.

11일 오후 밀양 단장면사무소 앞에서 총리를 향해 “저희는 보상을 원치 않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절규하던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중앙일보 귀엔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한 신문이 이틀 간격으로 비슷한 사회갈등에 이렇게 다른 시선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이런 신문과 일주일에 몇 번씩 사설을 공유하며 토론의 전범(典範)으로 삼겠다는 신문도 있다.

밀양의 대책위 주민들은 “선거 때만 되면 눈감고 새누리당 찍었다”고 고백했다. 그 주민들은 지금 한국에 원자력발전소가 몇 개 있고, 이 가운데 비리로 가동 중단된 원전이 몇 개인지 정확히 외울 정도로 단련됐다. 원전과 밀양 송전탑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다. 밀양을 지나는 송전탑은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싣고 달린다. 그것도 밀양의 촌부들이 쓸 전기가 아니라 대도시를 위한 전기다. 이런 밀양 주민들 보고 ‘버틸수록 더 보상받는다’고 사설에 쓴다면 망발이다.

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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