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철도사고와 민영화는 과연 어떤 관계일까요. 지난달 31일 대구역 사고와 관련해 철도노조는 “철도 시설과 운영 분리가 가져온 안전시스템 불일치 문제, 동일선상에서 고속열차와 일반열차 동시 진출입 문제와 효율화를 위한 과도한 인력감축 등 철도 민영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사고로 연결됐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철도 민영화와 대구역 사고를 연결 짓는 것은 옳지 않다”며 오히려 “철도노조 민영화 저지집회에 사고 관련자들이 동원돼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국토부 주장대로 사고 관련자들이 민영화 저지집회에 참석해 주의력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억측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민영화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국토부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 당사자로 지목된 기관사·여객전무·역무원 3명 중 2명은 조합원이 아닐뿐더러 철도노조 집회와 사고를 연결하는 것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마치 '해서는 안 될 일'인 것처럼 국민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위험한 주장입니다.

새누리당과 국토부는 최근 당정협의를 통해 사고 당사자에 대한 구상권 청구 등 민형사상 처벌 강화를 대책으로 제출하고 있습니다. 구조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반복되는 엄단은 전근대적인 대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추궁에서 원인규명으로”라는 구호는 세계 제일의 철도를 운영하고 있는 동일본여객철도회사 노사가 오랜 철도사고에 대한 대책과 교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확립한 철도사고에 대한 원칙입니다.

저는 이번 사고가 철도의 특성을 부정하는 민영화 방식으로부터 잉태된 사고라는 관점에서 원인을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번 사고는 전형적인 인적 오류로부터 발생한 ‘휴먼 에러’ 사고임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휴먼 에러’를 보완해 주는 ‘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요.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착각을 기계적으로 보완하고, 기계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오작동을 사람이 보완하면서 철도안전시스템이 구축돼 왔습니다. 대구역 1번선에 정차한 무궁화호 열차가 신호를 오인해 출발했을 때 정상적인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무궁화호 열차는 1번선 신호기와 연동돼 설치된 선로장치(하부구조)에 의해 경보를 기관차(상부구조)에 보내고 기관사가 이를 계속 무시해 진행하면 ‘강제로 비상제동’을 가동시켜 사고를 방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번 선로에 설치된 장치와 기관차에 설치된 장치가 서로 인식하지 못해 어떤 것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열차는 선로와 신호기 등 하부구조와 열차와 기관사·승무원 등 상부구조가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열차안전이 확보됩니다. 이러한 특성은 철도산업이 고속화·현대화될수록 강화됩니다.

철도를 비롯한 전력·가스·물 산업 등 네트워크산업 민영화는 기반시설과 운영을 분리하는 이른바 상하분리를 통해 이뤄집니다. 기반시설은 초기투자비용이 크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국가가 소유하고 나머지 운영부분을 1차적으로 분리한 뒤 이를 다시 기능별로 분할해 매각을 용이하게 하고 복수 운영자를 통한 경쟁체제 도입으로 효율화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기간산업 민영화 정책입니다.

예를 들어 전력산업 민영화 경우 송·배전을 담당하는 한국전력과 발전을 담당하는 발전회사로 분리하고, 발전회사는 다시 5개 회사로 분할해 경쟁체제를 도입했습니다. 분할된 발전회사들끼리 어떤 경쟁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알아보겠습니다.

철도 민영화 정책도 1단계로 기반시설과 운영부분 분리를 통해 시작됐습니다. 민영화를 위한 인위적인 시설과 운영 분리는 대구역 사고처럼 시설부분 열차보안장치와 운영부분 열차보안장치가 서로 호환되지 못하는 ‘안전의 불일치’ 상태를 유발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후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공식 사고조사 결과가 발표되겠지만 시설을 담당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운영을 담당하는 한국철도공사 간 사고원인을 둘러싼 책임공방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이번 사고가 시설물 결함이었는지, 차량 결함이었는지에 대한 공방 속에 결국 철도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철도 민영화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알려진 영국의 철도 민영화 교훈은 어떠한 경우에도 안전은 협상 대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분할된 철도는 결코 항구적인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진실입니다.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