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년간 국민의 발 노릇을 했던 공공철도가 위험하다.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철도 민영화 논란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경쟁을 통한 효율성 강화와 재무건전성 제고를 명목으로 수서발 KTX 법인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실상 철도 분할 민영화다.

철도 민영화 추진의 역사는 길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철도 민영화가 추진됐다. 철도노동자들의 투쟁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주춤하다가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발톱을 드러낸다.

한국철도가 새로운 100년을 내다봐야 하는 지금, <매일노동뉴스>가 사회적 대화를 통한 발전방안을 기대하며 철도 민영화를 둘러싼 주요 쟁점과 논란을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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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순서]

① 돌고 돌아 다시 철도 민영화

② KTX 분할의 허구, 그리고 후폭풍

③ 바람직한 철도산업 구조개편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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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철도정책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다. 왜 잘 돌아가고 있는 회사를 쪼개서 경쟁을 시키나?"

지난달 한국철도의 미래를 위한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얀 루덴(Janne Ruden) 스웨덴서비스통신노조(SEKO) 위원장이 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에 한 말이다. 외슈타인 아슬락센(Øystein Aslaksen) 국제운수노련(ITF) 철도분과 의장은 "자회사와 모회사가 경쟁하는 구조는 다른 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럽의 철도 전문가들도 물음표를 던진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모회사와 자회사, 경쟁 가능한가 

 

국토교통부는 철도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수익을 내고 부채를 털겠다고 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원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다수 노선끼리 경쟁하는 것도 아닌 모회사와 자회사 간 경쟁이 가능한가?"

경쟁을 통해 수익을 내려면 수서발 KTX와 서울·용산발 KTX 노선은 서로의 손님을 뺏어 와야 한다. 하지만 각 노선의 주된 이용고객이 달라 직접적인 경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종로에 사는 사람이 부산을 갈 때 가격이 10% 싸다는 이유로 지하철로 7분 거리에 있는 서울역을 놔두고, 40여분 넘게 걸리는 수서발 KTX를 타러 가지 않듯이 말이다. 되레 지역별 독점운영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수서발 KTX와 서울·용산발 KTX 이원화에 따른 동반 부실화도 우려된다. 수서발 KTX의 경우 기존 KTX보다 요금을 10% 인하하는 데다, 연간 수천억원의 선로 사용료를 내면서 투자자인 공공기금에 최소 5~6%의 수익률을 보장해 줘야 한다. 달릴수록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서울·용산발 KTX도 마찬가지다. 수서발 KTX와 요금경쟁을 하면서 요금인하 압박을 받게 되고, 기존 부채 이자에 선로이용료까지 내야 한다. 임상혁 철도노조 수원시설지부장은 "정부 방안은 아무리 봐도 도저히 계산이 맞지 않는다"며 "자회사를 살리기 위해 모회사를 죽이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임 지부장은 "철도공사의 수익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자회사가 설립되면 모회사의 수익은 최소 30% 줄어들 텐데, 그 상태에서 부채 이자에 선로사용료까지 내면 경영이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간매각 막을 안전장치 '헐겁다'

'경쟁이 가능한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덮어 놓고 나면 자연스럽게 관심은 수서발 KTX 운영회사의 실체로 옮겨 간다. 국토부에 따르면 수서발 KTX 운영회사의 30%는 철도공사가 출자하고, 나머지 70%는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이 지원한다. 국토부는 공적자금 지분을 민간에 매각해 민영화한다는 여론을 의식한 듯 '안전장치'도 소개했다. 민간매각 제한에 동의하는 자금만 유치하고, 이를 투자약정·정관에 명시해 민영화 시비를 사전에 막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안전장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서상범 변호사(법무법인 다산)는 상법 제335조(주식의 양도성) 제1항을 근거로 들었다.

"주식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 다만, 회사의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발행하는 주식의 양도에 관하여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할 수 있다."

서 변호사는 "이사회의 승인을 요하도록 정관에 정할 수 있다는 취지일 뿐 주식의 양도 자체를 금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정관 규정으로 주식양도를 제한할 때도 주식양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둘 순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공공성 유지를 위한 정관으로 연기금의 주식매각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중장기적으로 공공성을 잃고 수익성에 치중하는 민영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국토부는 한미FTA로 인해 철도산업이 투기자본의 각축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수서발 KTX에는 한미FTA에 따라 미국 자본의 시장접근이 허용된 구간이 포함돼 있다. 바로 수서~평택, 동대구~부산 구간이다. 한미FTA 협정문 부속서I(현재유보)의 두번째 조항을 보면 경제적 수요심사를 통해 면허를 취득한 자는 2005년 7월1일 이후 노선에 대해 철도운송서비스와 부수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2005년 6월30일 이전에 건설된 평택~동대구 구간을 제외하더라도 2005년 7월1일 이후 건설됐거나 건설될 구간인 수서~평택, 동대구~부산 구간에 대해서는 미국자본의 시장접근을 제한할 근거가 없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철도산업 발전방안은 미국자본의 시장접근권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발상"이라며 "국토부 말대로 알짜배기 노선인 수서발 KTX 구간 운영권에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자본이 있을 경우 한미FTA 협정위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국토부는 '경제적 수요심사'라는 문구를 근거로 "정부가 철도운영권 부여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적 수요심사가 미국기업의 주식매수까지 규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서발 KTX 운영회사의 지분 70%를 차지할 공공자금을 단 1%도 민간에 허용하지 않는 방법이 마련되지 않는 한 미국자본의 주식매수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국토부가 민간매각을 막기 위해 내세운 안전장치가 헐거운 상황에서 말이다.

국토부 "미국이 다른 나라에서 철도사업 하는 거 봤나?"

어쩌면 경제적 수요심사를 근거 삼아 미국자본 진입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국토부 관계자를 만난다면 그나마 성의 있는 반박을 들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미국자본의 시장접근'에 대한 우려를 아예 "허황된 꿈"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꾸 철도가 미국자본에 먹힌다고 주장하는데, 그야말로 꿈에 부푼 얘기"라며 "미국이 철도산업이 개방된 유럽·일본에 가서 주식을 인수하고 철도를 운영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철도는 수익률이 높지 않기 때문에 자기 나라에서 운영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수익률이 높지 않은 남의 나라 철도사업을 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이면서까지 뛰어들 자본이 있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은 "그럼 미국업체도 수익을 낼 수 없는 노선을 모회사와 자회사가 경쟁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판을 벌린 것이냐"며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박 연구위원은 "단순히 미국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며 "한미FTA에 따라 철도산업에서 빗장이 풀릴 경우 당장 수익이 없더라도 장기적으로 대륙횡단철도 연결 등 한국철도의 시장규모를 보고 외국자본이 뛰어들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수익성 높은 고속선을 독점할 수서발 KTX를 어느 외국자본이 탐내지 않겠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은 "우리가 한미FTA 체제하에 있다는 걸 국토부 관료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요금이 싸진다는데 … 리얼리?"

요금은 어떨까. 국토부는 대대적인 요금혜택이 있을 것처럼 홍보한다. 물론 초창기 요금인하 효과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일단 적자노선에 대한 부담이 없고, 사업 초기 투자비용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금 상한제를 두고, 코레일보다 10% 싸게 요금을 책정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신장개업에 서비스를 추가한 꼴이다.

94년 철도를 민영화한 영국의 요금추이를 보자. 영국도 처음에는 요금인상을 막기 위해 요금인상 상한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2010년 기준 요금은 95년과 비교해 무려 107%나 올랐다. 정부 개입으로 요금인하를 강제하는 것은 운영 초기에 한할 뿐이다. 시장논리에 따른 대폭적인 요금인상은 당연한 수순이다.

철도 현장에 불어닥친 불안감

철도산업 발전방안은 철도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조건 저하'와 '구조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박세증 노조 청량리기관차 승무지부장은 "사업영역별로 별도 회사로 분할되면 단체협약이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노동조건 저하를 우려했다. 박 지부장은 "자회사가 민간기업에 팔릴 경우 이윤을 추구하느라 노동조건이나 안전은 도외시할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복기 노조 청량리전기지부장은 "민영화도 민영화지만 구조조정에 시달릴 것 같아 걱정된다"고 밝혔다. 이 지부장은 "자회사로 가네, 위탁업체로 가네, 불안해하는 직원들이 많다"며 "정부나 코레일이 아무리 고용승계를 하겠다고 말해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조합원들은 일단 자회사로 넘어가면 끝이라고 보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안전사고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국토부는 코레일을 수서발 자회사와 물류·차량·시설유지보수 등으로 분할하면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현장에서 단련된 철도노동자들은 유기적 네트워크가 깨질 것으로 우려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심각한 철도사고를 네 번이나 겪은 영국이 그랬다. 하현아 노조 서울차량지부장은 "철도는 네트워크 사업이라서 각 부문이 얼마나 연계를 잘하느냐가 안전운행의 기본인데 수송원과 기관사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였던 것들이 없어지면 사고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철도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예고하며 국토부의 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반대하는 이유다.

배혜정 기자
윤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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